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대한축구협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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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용맹하고, 주도적인 축구. 이른바 ‘빠·용·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제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축구철학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구체적으로 대표팀의 ‘축구모델’이라는 개념이 정립됐다. A대표팀부터 아래 연령별 대표팀, 유소년 축구까지 일관된 훈련체계에 대한 그림도 나왔다. 기술축구를 향한 방향이 보고서로 명문화된 것 역시 처음이었다. 기술발전위원장을 맡다가 올해 기술총괄이사가 된 이임생 이사가 이뤄낸 핵심 성과다.
하지만 이임생 기술이사는 축구협회를 떠난다. 24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질의 과정에서 당한 압박감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퇴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임생 기술이사의 잘못은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의 마지막 공정 책임자였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대표팀 감독 후보의 1~3순위는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1~10차 회의에서 이미 결정됐다. 더 이상 전력강화위원회가 열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정해성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세 명의 후보와 접촉하는 과제가 남았고, 그 마무리 작업을 이임생 이사가 처리했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문체위 의원들은 이임생 이사를 두고 “정관을 위배하고 위임받았다” “불법한 11차 전력강화위의 결정이었다” “전력강화위원을 회유했다”라며 질타했다.
이 문제는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임생 이사는 전력강화위원장 유고로 인사권자인 정몽규 회장의 지시에 따라 2순위(다비드 바그너)와 3순위(거스 포예트) 후보를 만났고, 마지막으로 1순위 후보(홍명보)와 접촉해 그를 적임자로 최종 낙점했다. 한국형 축구모델의 체계화를 위한 A대표팀 감독의 지원 약속도 받아냈다. 축구협회 쪽은 “이것은 정관과 관계가 없고, 규정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런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1998 프랑스월드컵의 투혼을 상징하는 이임생 기술이사는 은퇴 이후 프로구단 사령탑까지 역임하며 늘 현장을 지켰다. 특히 대한축구협회 강사로 유·청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기술축구 필요성을 절감했고, 풀뿌리까지 한국형 기술축구의 모형을 확산시키기 위해 전력 질주해왔다.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춘 그는 국제축구 회의 등에서 기술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누구한테든 물어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배운다고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행정과 기술 양 축으로 구성된 축구협회에서 대표팀 전력과 직결된 기술 총책임자의 사퇴는 업무의 연속성 차원에서는 한국 축구의 후퇴로 볼 수 있다. 언론에서 이미 나온 얘기를 재탕, 삼탕하는 국회에서 이뤄진 설전의 결과다.
이 이사는 이날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자 “대표 선수들이 잔디 상태가 (안 좋아) 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위원님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잔디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문체위 위원장으로부터 반성하지 않고 책임을 딴 데 돌리고 있다는 질책을 들었지만, 이것이 투박한 마음을 지닌 이임생 기술이사의 본바탕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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