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 자리에 앉아 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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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안팎에서 격변이 예상되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방위비 분담금 등을 놓고 ‘미국 우선주의’ 기조로 한국을 압박했을 뿐 아니라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동맹국들을 더 강하게 몰아세우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또 집권 때 세차례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며 북한과는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여러번 시사했다.
한겨레는 12일(현지시각)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3명과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에서 경제적 이익을 더 얻어내려고 시도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나 북핵 협상 재개 전망에 대해서는 트럼프 특유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더 거래적으로 한국 대할 것” “방위비 합의 파기 가능성도”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한-미 관계는 “더욱 순탄치 않고 예측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및 ‘칩과 과학법’ 관련 정책을 바꿔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 있고,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프랭크 엄 전 미국 국방장관실 대북문제 선임고문도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보다 더 한국을 거래적으로 다룰 것”이라며 “한국이 자기방어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쓰라고 요구하고 미군 철수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트럼프가 한·미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서두른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이를 파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 전개는 트럼프가 핵무기 확산은 피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점과도 맞물려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또 트럼프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전임자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경향이 강해 이 부분에도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국이 “돈을 내지 않는다”며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또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지난달 한·미가 합의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의 9배에 해당하는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받아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동맹의 유용성에 대해 크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그의 재집권은 확장억제 공약 등과 관련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들에 “훨씬 큰 불확실성”을 안긴다고 지적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 내용을 트럼프가 수용할지도 불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주한미군 철수·감축론과 관련해 여 석좌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고려하면 트럼프 쪽도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을 존속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국 견제 등을 위해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는 안보 매파와, 해외 주둔 미군을 귀국시키고 방위비를 줄여야 한다는 쪽의 논쟁과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대화 의사 있지만 조건·시기 지켜봐야”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북 협상 재개에 긍정적인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엄 전 선임고문은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 “개인적 외교 재개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은 5년간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했고 안보 지형도 변화한 상태라 협상이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중국, 러시아, 중동에서의 도전”은 북한을 다시 상대하려는 트럼프의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도 “미국의 새 대통령은 누구든 경제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대만, 중동이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김 위원장으로서도 북-미 정상 외교 실패 경험, 문재인 전 대통령 같은 중재자의 부재, 러시아의 도움으로 제재를 회피하면서 군사 협력 대가로 에너지와 식량 등을 제공받는 점 등이 미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 전략무기 전개나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면 이에 상응해 적극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로 나선 2018~19년과 달리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매우 적대적이라 한국이 소외되거나 미국의 요구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여 석좌는 “트럼프는 동맹들에 통보하지 않고 협상에 나설 수 있다”며 “이는 윤석열 정부와의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엄 전 선임고문은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한국 패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윤석열 정부의 접근 방식은 확고한 간여 노력과 충돌한다”며 “계속 이러면 트럼프한테는 한국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지렛대를 더 줄 수 있다”고 했다. 대북 압박 지속과 강화를 위해 연합훈련과 전략무기 전개에 의존할수록 트럼프가 더 큰 요구를 할 것이라는 얘기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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