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전 이기고도 잠 못 자…첫 5분만 버티자고 했는데, 6분 만에 실점했네요"
"내년엔 통합우승 목표…은퇴하는 심서연, 내겐 오늘의 MVP"
수원FC 위민, 2024 WK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 |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손목에 착용한 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145까지 올랐더라고요. 하하."
화천 KSPO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여자축구 수원FC 위민을 WK리그 챔피언으로 이끈 박길영 감독이 경기 중 극도로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박길영 감독이 지휘한 수원FC는 9일 강원 화천생활체육공원에서 열린 디벨론 WK리그 2024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화천 KSPO에 1-2로 졌으나 1, 2차전 합계 3-2로 앞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길영 감독은 우승 직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생각이 났다. 올 시즌 다사다난했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오는 과정도 힘들었는데,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줬고 스태프들도 열심히 할 일을 해줬다"며 영광을 돌렸다.
박 감독이 입을 열자마자 '지난해' 얘기부터 꺼낸 이유가 있다.
박 감독과 수원FC는 지난해 인천 현대제철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 3-1로 먼저 이기고도 2차전에서 2-6으로 대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올해도 수원FC는 1차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KSPO를 2-0으로 이겨 기선제압을 했다.
수원FC는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나 박 감독도, 선수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박 감독은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부담이 상당했다"는 박 감독은 "우린 지난해에도 그런 일을 겪어본 팀이기 때문"이라며 "후반전에 KSPO의 파상공세에 밀리면서 워치에서 측정된 심박수가 145까지 찍히더라"라고 말했다.
기뻐하는 박길영 감독 |
수원FC는 일주일 만에 플레이오프(PO), 챔피언결정전 2경기를 모두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박 감독은 "경기가 없는 날엔 훈련보다 회복에 중점을 뒀는데, 경기 막판 선수들의 다리가 떨어지지가 않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며 "KSPO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지난해 기억이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이날 수원FC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KSPO 최유정에게 실점했다.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경기 전 선수들에게 초반 5분만 버티자고 했는데, 실점 시간을 보니 6분이더라. 5분은 버텼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라며 머쓱해한 박 감독은 "10분만 버텨보자고 할 걸 그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길영 감독은 전반전 흐름이 좋지 않자 전은하 카드를 전반 30분 만에 꺼내 들었다.
박 감독의 용병술은 적중했다.
전은하가 전반 37분 동점 골을 터뜨렸다.
박 감독은 "계획에 없던 골"이라며 웃은 뒤 "전은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후반전 상황을 보고 기용하려고 했는데, 미드필드에서 송재은이 밀리는 경향이 있어서 빨리 바꿨다"고 설명했다.
전반 추가 시간 KSPO 최정민에게 한 골을 더 내줘 1, 2차전 합계 점수에서 3-2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던 수원FC는 KSPO의 계속된 폭격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는데, 결국 추가 실점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심박수 145'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게 됐다.
앞서가는 수원FC 위민 |
이날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수원FC는 14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통합 11연패를 달성한 인천 현대제철 왕조도 종말을 고했다.
박 감독에겐 사령탑 경력 7년 만에 얻어낸 첫 우승 트로피다.
2015년 수원FC의 전신 수원시시설관리공단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감독은 2017년 시즌 도중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18년부터 정식으로 팀 지휘봉을 잡았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큰 목표를 이룬 박 감독의 시선은 이제 '통합 우승'에 닿는다.
박 감독은 "지난해엔 리그 3위, 챔프전 준우승을 했다. 올해는 리그를 2위를 마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며 "내년엔 정규리그 1위를 하고 통합우승까지 이루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더 큰 목표를 위해 비시즌 자유계약선수(FA)와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세대교체를 꾀할 생각이다.
이날 수원FC의 선발 명단 중 4명이 30대고, 선수단 전체적으로도 20대 후반∼30대 선수들이 많은 편이다.
박 감독은 "내가 알기로도 우리 팀 스쿼드의 평균 연령대가 리그에서 가장 높다"며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피를 수혈해 신구 균형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심서연(오른쪽) |
이날 경기를 끝으로 그라운드와 작별하는 심서연(35)을 향해서는 고마움을 표했다.
박 감독은 "2010년 수원시시설관리공단에 입단해 우승을 경험했고, 선수 생활의 끝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만큼 관리를 잘했다는 것"이라며 "올해 초 모친상 이후에도 잘 버텨 줘서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존경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심서연에게 지도자 생활에 관한 의중을 물었다가 퇴짜만 맞았다는 박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겠다더라. 지도자는 죽어도 안 한다고 했다"며 "오히려 내게 '감독님은 안 힘들어요?'라고 반문하더라"라고 전했다.
후반 시작 직후 최유정의 결정적인 슈팅을 골 라인에서 머리로 건져낸 심서연이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상을 받고 싶어하는 눈치였다고 전한 박 감독은 "오늘만큼은 최고의 MVP"라며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MVP를 수상한 문미라에겐 "주장으로서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후배 선수들과 선배 사이에서 조율을 잘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soru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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