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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택시기사·대학생 이끌고 기적 만들었죠"…'라오스 히딩크' 하혁준 감독[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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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행복해…다음 목표는 SEA게임 결승 진출"

뉴스1

2일 서울 카페에서 '뉴스1'과 만난 하혁준 라오스 감독 ⓒ News1 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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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동남아 월드컵'이라 불리는 2024 미쓰비시컵에는 3명의 한국인 지도자가 나섰다. 결승전에 진출한 베트남의 김상식(49) 감독, 인도네시아 '축구 대통령'으로 불리는 신태용(55) 감독, 그리고 라오스의 하혁준(55) 감독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감독에 비해 약체 팀을 이끄는 하혁준 감독을 향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라오스 히딩크'라 불리는 하혁준 감독은 미쓰비시컵의 또 다른 영웅이라 불릴 만큼 값진 성과를 냈다.

대회를 마치고 모처럼 국내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혁준 감독을 2일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하 감독은 "라오스 대표팀을 맡은 동안 몸무게가 6㎏나 빠졌다. 대회 후 3일 동안 잠만 잤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라오스는 2024 미쓰비시컵 A조 조별리그 2무2패를 기록,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숫자만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86위로 동남아시아에서도 약체인 라오스는 127위 인도네시아, 150위 필리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 끝에 비겼다.

라오스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달려와 하혁준 감독을 와락 끌어안았을 만큼 기적 같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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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축구대표팀 선수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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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축구 인프라 등 시스템이 같은 동남아 팀들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진다. 국가대표선수들 대부분 '투잡'을 뛴다.

'에이스' 파타나 폼마텝은 택시 운전사, 푸솜분 판바봉은 대학생이다. 유소년 코치와 식당 알바 등도 있다. 선수들이 축구로 벌어들이는 월급은 최대 20만원이다.

지난해 8월 지휘봉을 잡은 하혁준 감독은 "처음에 왔을 때는 막막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라오스에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과 코치도 없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지만 체력 테스트 결과 한국의 중학생 수준도 안 됐다. 멘털 관리 능력도 떨어져 먼저 골을 먹거나 질책을 받으면 회복도 더뎠다.

하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 먼저 집중한 뒤 하나씩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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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혁준 라오스 감독 ⓒ News1 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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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전술적인 개념이 부족해서 매일 스리백과 포백 등의 기능과 원리를 번역해 보여주고, 공부시켰다. 이후 선수 한 명 한 명마다 맞춤형 과제를 내주고 '숙제 검사'도 했다.

축구선수 기준 턱없이 부족한 열량의 식단을 보며 라오스축구협회에 따져 '고기반찬'도 얻어왔다.

선수들을 위해 외부에 큰 소리도 냈다.

그는 "무앙통 유나이티드(태국)와 연습 경기를 하는데, 상대가 대놓고 무시하고 거친 경기를 해도 다들 착해서 말도 못하더라. 그 자리에서 경기 중단시키고 가서 따졌다. 이후 선수들이 더 마음을 열고 따라줬다"고 회상했다.

이전까지 라오스는 국제 무대에서 자주 무시를 당했다. 하 감독은 "A매치 공문을 보내도 아예 답도 안 올 때도 있다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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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라오스 선수들ⓒ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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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쓰비시컵에서 2무를 기록,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태국 프로 무대에서 라오스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홍콩에서 먼저 A매치를 치르자는 제안도 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선수들이 하 감독과 함께 성장하며 얻은 자신감이다. 하 감독은 "라오스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지? 되잖아'라는 메시지를 준 게 가장 큰 소득"이라면서 기뻐했다.

'틀'을 깨고 나온 라오스 선수들은 자신감이 크게 올라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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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2022.6.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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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표현이지만, 하 감독이 라오스를 이끌고 성장한 스토리는 흡사 2002 월드컵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린다.

단순히 성적을 내는 것뿐 아니라 한 나라의 축구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선수들의 마인드 세팅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다들 축하를 전하고 비겨도 기뻐하는데, 나는 아쉬움이 크다. 내심 4강 진출도 예상했었다"고 밝히는 하 감독의 대회 총평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던 히딩크 감독의 발언과 오버랩된다.

지휘봉을 잡은 지 4개월 만에 의미 있는 발판을 만든 하 감독의 신화는 이제 시작이다.

하 감독은 "라오스의 라오 리그가 열릴 때 대표팀을 소집하면 리그 팀들이 파산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3월에 리그가 폐막하면 그때부턴 제대로 소집해 준비할 수 있다"면서 "미쓰비시컵에서 얻은 소득에 더해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올해에는 반드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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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혁준 라오스 감독 ⓒ News1 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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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음 시선을 두고 있는 건 올해 12월 태국에서 열리는 '동남아 올림픽'인 SEA게임이다. 그는 "지금처럼만 잘 준비하면 결승 진출도 가능하다. 남들은 비웃겠지만 우리 선수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라오스는 SEA게임 축구에서도 이렇다 할 역사가 없다. 동메달 결정전이 열리지 않았던 2009년 공동 동메달을 땄던 게 66년 역사에서 유일한 메달이다.

이전까지 "'라오스 히딩크'를 보는 것 같다"는 표현에 "아직 멀었다"며 주저하던 하 감독은 "SEA게임 결승전에 진출하면 그땐 그렇게 불러주셔도 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모처럼 국내에 들어온 하혁준 감독은 설 연휴를 고향에서 지내는 것도 포기하고 16일 짐을 싸 라오스로 돌아간다. 하혁준 감독은 "감독이 더 힘들어야 선수들이 덜 힘들다. 다시 열심히 뛰어보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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