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꺾고 챔프전 마침내 우승…지난 시즌 4강 PO 탈락 아픔 딛고 대업
김승기, 전희철에 이어 선수, 코치, 감독으로 정상 밟은 역대 세 번째 감독
LG 조상현 감독 '어려운 1승' |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프로농구 창원 LG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창원체육관에는 세탁기가 2대다.
선수들의 운동량은 많지만 세탁기는 두 대뿐이라 가끔은 빨랫감이 쌓인다.
지난 시즌의 어느 날 한 베테랑 선수가 세탁기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빈 세탁기가 없었다.
그중 한 세탁기의 세탁물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안에는 와이셔츠 하나뿐이었다.
'누가 와이셔츠만 달랑 세탁한 걸까'라는 생각에 잠긴 이 선수의 의문은 곧 풀렸다.
자택이 서울인 조상현 감독은 창원에서는 주로 체육관 내 감독실에서 지낸다.
빨래는 손으로 빨거나 선수단 훈련장에 설치된 세탁기로 해결한다. 경기 영상을 분석하다가 감독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상 감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한 관계자는 "일찍 출근하시고, 늦게 퇴근하시는 감독님의 생활은 올 시즌도 똑같다. 시간을 정확히 재지 않아 지난 시즌이랑 근무 시간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체육관에 오래 계신다"고 말했다.
조상현 감독 '잘했어' |
주변에서 '일중독'이라고 의심하는 조상현 감독은 17일 서울 SK와 2024-202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7차전 승리를 지휘하면서 우승 사령탑이 됐다.
프로 농구 원년 구단 LG는 창단 28년 만에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 샴페인을 터뜨려 비원을 마침내 풀었다.
감독으로 맛본 첫 우승으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선수로 뛴 LG에 구단 사상 첫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이번 우승은 조상현 감독의 '뚝심'이 만든 성과다.
조상현 감독 체제의 LG는 프로농구 최고의 수비팀으로 자리 잡았다.
세 시즌 동안 LG와 맞붙은 팀들의 필드골 성공률은 43.6%까지 떨어졌다.
조상현 감독에게 공격보다 수비에 중점을 두는 이런 스타일은 지도자로서 농구 철학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아셈 마레이, 이재도(소노), 이관희(DB) 등 처음 LG 지휘봉을 쥐었을 때 선수 구성을 보고 '이 선수들로는 공격 농구를 할 수 없다'고 조상현 감독은 판단했다.
이 같은 조상현 감독의 직관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마레이, 이재도, 이관희가 함께한 2022-2023, 2023-2024시즌의 LG는 모두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해 4강 플레이오프(PO)에 직행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챔프전 무대를 밟지 못하고 짐을 쌌다.
지난 시즌 4강 PO에서 수원 kt와 치열한 승부를 펼친 LG는 안방에서 열린 운명의 5차전 전반 종료 1분여 전 16점을 앞서 챔프전행 티켓을 따내는 듯했다.
창원 LG 조상현 감독 |
그러나 연속 실책으로 흐름을 내준 뒤 후반에만 실책 9개를 헌납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좌절감을 감추지 못한 조상현 감독은 이재도, 이관희를 모두 다른 팀으로 보내는 과감한 선수단 개편을 감행, 새 시즌 승부수를 던졌다.
개인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공격 효율성이 떨어졌던 이재도·이관희가 떠나자 양준석, 유기상 등 젊은 선수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주전 포인트가드로 올라선 양준석은 정규리그 평균 실책이 1.6개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적 경기 운영 능력을 뽐내 '조상현 농구'의 완성도가 더욱 올라갔다.
외곽에서는 양준석, 골 밑에서는 마레이가 버텨주면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느리지만, 가장 안정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LG의 농구가 결실을 봤다.
올 시즌 LG는 경기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KBL이 활용하는 '페이스' 지표가 71.2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경기 흐름을 조상현 감독의 의도대로 통제하는 LG의 '느림보 농구'가 나타난 셈이다.
상대에 대한 '현미경 분석'과 뚝심으로 대업을 일궈낸 조상현 감독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맛본 인물로 기록됐다.
김승기 전 소노 감독, 전희철 SK 감독에 이어 KBL 역대 세 번째다.
슈터로 1999-2000시즌 청주 SK의 우승을 이끈 조상현 감독은 코치로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의 우승에 일조했고, 9년 뒤에는 사령탑으로 프로농구 정상에 섰다.
분위기 좋은 LG 세이커스 |
pual0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