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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삭발 투혼’하던 여오현, ‘방긋 미소’ 에겐남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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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GS칼텍스전 앞둔 여오현 감독대행
    기업은행, 7연패 끊고 3연승 질주
    "웃으며 '방긋 지시'...공감 위해 에겐남 되려 해"


    한국일보

    여오현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이 지난달 26일 화성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26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득점을 올리자 방긋 미소를 띠며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그는 이날 지휘봉을 잡고 첫 승을 따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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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배구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반등이 심상치 않다. 시즌 개막 전 우승 후보로 거론됐던 기업은행이었지만, 시작 첫 경기부터 패했고, 간신히 1승을 거둔 이후 다시 7연패의 늪에 빠지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설상가상 김호철 감독이 사퇴하고 여오현(47)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여 감독대행 체제는 예상 밖의 반전을 만들고 있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선수단 분위기 개선과 조직력 재정비에 나서며 팀의 ‘심폐 소생’에 성공한 것. 바닥을 쳤던 기업은행은 지난달 26일 흥국생명전에서 한 세트도 주지 않은 '셧아웃' 승리로 조금씩 호흡하더니, 페퍼저축은행과 정관장을 상대로 내리 3연승을 달렸다. 10일 GS칼텍스까지 잡고 4연승을 내달리겠다는 게 여 감독대행의 각오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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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감독대행 체제하에서 선수 구성에 변화를 줬던 것이 3연승의 핵심 동력이 됐다. 그동안 리시브 불안으로 김 전 감독 체제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아시아쿼터 알리사 킨켈라(등록명 킨켈라)를 과감하게 아포짓 스파이커로 돌린 것이 주효했다. 팀 내 최장신(193㎝)인 킨켈라를 오른쪽에 세우고, 빅토리아 댄착(등록명 빅토리아)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며 공격 라인을 재구성했다. 여 감독대행은 9일 한국일보에 "킨켈라가 대학에서도 아포짓 스파이커 경험이 있어 오른쪽에서 움직임이 좋다. 높이를 활용해 공격 옵션을 다양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새롭게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여오현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이 지난달 26일 화성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26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열정적으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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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여오현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이 지난달 26일 화성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26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교체돼 들어오는 임명옥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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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킨켈라 효과'는 즉각 빛을 발했다. 킨켈라는 지난 4일 정관장전에서 12득점(공격 성공률 41%)을 기록하며 최근 ‘7경기 연속 한 자릿수 득점’의 부진을 깨끗이 씻어냈다. 또 왼쪽으로 옮긴 빅토리아는 후위공격까지 가세하며 공격 루트는 한층 풍부해졌다. 수비에서는 국내 최고 베테랑 리베로 임명옥이 받쳐주며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지표도 확연히 달라졌다. 팀 속공 성공률이 44.25%로 전체 2위고, 이동공격 성공률도 3위(48.3%)다. 수비에선 디그 1위(세트당 22.9회), 블로킹 2위(세트당 2.52개) 등 공수 전반의 균형감이 살아나며 ‘반등의 조건’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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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4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 시절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이 삭발을 한 채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여오현은 직전 시즌 삼성화재에서 삭발 투혼을 펼치며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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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여 대행이 요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일까? 바로 ‘공감형 지도자’였다. 가장 먼저,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표현으로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성향을 지닌 남자, '에겐남'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현대캐피탈 선수 시절 삭발 투혼을 주도한 ‘테스토스테론형’ 파이터였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여 대행은 "저는 원래 '테토남(남성호르몬+남자)' 스타일"이라면서 "하지만 지금 우리 선수들한테는 에겐남처럼 다가가려 한다. 요즘 지도자에게 공감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3연승의 비법’ 역시 결국 ‘소통’이란 설명이다.

    코트에서 작전 지시를 할 때도 표정부터 바꿨다. 중계 화면에는 입꼬리를 양쪽으로 치켜 올린 '방긋' 미소의 여 대행이 자주 잡힌다. 그는 "일부러 의식하면서 웃는다. 제가 굳은 얼굴이면, 젊은 선수들이 받아들일 때 경직될 수 있다”며 “훈련할 때도 항상 '웃자' '밝게 하자'를 강조한다.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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