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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삼양식품이 지난달 3일 재출시한 우지라면 '삼양 1963'이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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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고 인상 깊었던 글. 한 소비자가 삼양식품에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우지라면 재출시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왔더란다. "다시 우지를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소중한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이런 고객들의 잇단 요청에 힘을 얻었나 보다. 그로부터 1년여 뒤 삼양식품은 우지라면을 재출시했다.
□1989년 11월 3일, 검찰은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공업용 소기름(우지)을 원료로 라면 등을 만들어 판 혐의로 삼양식품을 비롯한 5개 기업 대표와 임원 10명을 구속했다. 이른바 ‘우지 파동’이었다. 삼양식품은 부도덕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1심 유죄를 뒤엎는 반전이 일어났고,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미국에서 식용으로 사용 않는다고 우리나라에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게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상처의 골은 깊었다. 수천만 개의 라면을 폐기했고, 직원 1,000명가량이 짐을 쌌다. 30%대이던 시장점유율은 3분의 1로 급전직하했다. 우지보다 싼 식물성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이 부동의 1위로 올라서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2014년 95세 나이에 별세한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은 2009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한을 토했다. “검찰이나 언론이 일제히 비도덕한 기업이니 악덕기업이니 그랬단 말이야. 사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전율을 느꼈어요.”
□우지라면 ‘삼양 1963년’ 재출시일은 36년 전 우지 파동이 시작됐던 11월 3일로 택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우지와 팜유의 최적 배합비를 찾아 과거 우지라면 향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불닭볶음면’ 성공에 따른 자신감 덕이기도 하겠으나, 아픈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든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창업주 며느리인 김정수 부회장은 “시아버지가 평생 품었던 한을 풀어드렸다”고 했다. 소비자 반응은 뜨겁다. 출시 한 달도 안 돼 판매량이 700만 개를 넘었다. 당시 우지라면 공격에 앞장섰던 언론계 일원으로서 자성의 마음으로 ‘반짝 관심’이 아닌 ‘대박’을 응원한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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