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8일 조간신문은 일제히 수염이 덥수룩한 황우석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황우석은 오랜 칩거를 끝냈다. ‘악의적 제보자’와 ‘과욕에 빠진 PD’ 때문에 고통받던 영웅이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날개를 펼치는 스토리가 완성되고 있었다. YTN ‘협박 취재’ 폭풍은 진위 논란을 휩쓸어갔고 황우석 지지와 난자 기증 열기는 고조됐다. 황우석에겐 국민들의 박수 속에 실험실로 복귀하는 대단원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 한국일보 1면은 전혀 다른 소식을 전했다. ‘서울대 생명과학 소장파 교수들 “논문 검증 鄭총장에 건의”’라는 단독 보도였다. 논문 진위가 국가적 혼란이 된 후 처음으로 서울대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의혹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어떤 정부 부처, 권위있는 기관과 전문가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한치의 의심 없이 황우석을 옹호하던 사람들을 멈칫 하게 만든 목소리였다. 소장파 교수들의 용기는 황우석 사태의 대반전을 불렀다.
2005년 12월 8일 자 한국일보 1면. 황우석 교수가 칩거를 끝내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는 사진과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논문 검증을 총장에게 건의한다는 단독 기사가 실렸다. 논문 의혹이 종식되는 줄 알았던 순간 대반전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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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들 행동에 돌입하다
12월 5일과 6일 사이 생명과학 교수들의 기류는 확 바뀌었다. 논문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이는 물론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지목한 사진 중복ㆍDNA 지문 조작 흔적의 여파였다. 12월 5일 저녁 최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운찬 총장에게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12월 6일 임대식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에게 전화해 “뜻 있는 생명과학자들이 모이자” “서울대가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대전 KAIST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 교수들이 웅성거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준호(서울대) 최준호(KAIST) 교수 등이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대가 나서면 KAIST도 지원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5년 황우석 논문 검증을 건의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이현숙의 제안으로 12월 6일 저녁 생명과학부 교수 8명이 유전공학연구소에 모였다. 성노현을 제외하고는 서울대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80년대 학번의 젊은 교수들이었다.
“기자회견을 하죠.”
이현숙은 제안했다. 성노현은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총장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하자고 했다.
12월 7일 오전 이준호 이현숙 박상현 교수가 머리가 맞대고 건의문 초안을 잡았다. 흩어져서 브릭에서 제기된 사이언스 논문의 데이터 의혹, 미국 보건복지부 연구진실성위원회 규정, 해외 사례를 조사했다. 다시 모여 건의문 톤을 순화했다. 틈틈이 교수들을 찾아가 서명을 받았다. 저녁까지 자연대, 의대, 치대 교수 31명이 이름을 올렸다. 마치 독립선언서라도 쓰는 듯했다.
황우석의 논문 검증을 입밖에 내는 게 위험한 일로 여겨지던 그런 때였다. MBC가 만신창이가 되고 제보자 색출 목소리가 드높았다. 교수들이 다칠 것을 걱정할 만큼 분위기는 폭압적이었다. 이현숙은 잘못 되면 학교를 그만둔다는 각오를 했다. 이날 저녁 소장파의 움직임을 파악한 내가 확인차 이준호에게 전화했을 때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냐”고 화를 벌컥 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황우석을 떠받치는 어마어마한 권력과 지지를 공포로 느끼던 때였다.
“학교 조사가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한국일보 보도 탓에 12월 8일 아침부터 서울대 총장실 앞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이현숙은 오전에 총장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후 늦게 박상현과 함께 ‘총장님께 드리는 글’을 들고 정운찬을 만났다.
“대학 차원에서 과학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해 의혹을 검증해야 합니다. 우선 자체 조사를 하겠다는 발표를 해주십시오.”(이현숙 박상현)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떻게 됩니까?”(정운찬)
“일차적으로 소속 기관이 조사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만약 해외에서 먼저 조사하게 되면 서울대는 완전히 3류 대학이 됩니다.”(이현숙 박상현)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정운찬)
일이 안 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무능하거나 심약한 총장이 건의를 무시하거나, 교육부나 과학기술부가 총장을 압박해 조사를 막거나, 연구처장이 정치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황우석을 구하는 결론을 유도하는 등등의 경우다.
실제로 소장파 면담에 앞서 열린 학장·보직교수 회의에선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으로 풀라’는 말이 나왔다. 학내에서 소장파 교수들을 향해 "학교를 위험하게 만든다” “기껏 키운 생명과학계 파이를 날릴 거냐”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학교 밖 원로 학자들과 정부도 부담이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2005년 서울대 총장으로 황우석 논문 검증을 실시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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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장이 정운찬(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었고 연구처장이 노정혜(현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 이사장)였다는 건 진실의 편에서 대단한 행운이었다. 정운찬은 이공계 연구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사이언스가 검증한 것을 우리가 왜 검증하냐’고 헛소리 하는 학자가 아니었다. "조사해 봐서 문제가 있으면 밝히면 되고, 아무 문제가 없으면 황우석이 더 올라갈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정운찬, 2025년 12월 8일 통화)을 했다. 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할 때 노정혜는 과학적 진실이라는 원칙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기준점이 돼 주었다. 조사 막판 정운찬이 징계 수위로 고심할 때도 노정혜가 중심을 잡았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안 지는 이들
브릭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었어도 서울대가 검증을 결단하지 않았거나 외압으로 무산됐다면 진실은 묻혔을 것이다. 황우석은 환호 속에 복귀하고 난자를 기증받아 줄기세포를 채워넣으려 했을 것이다. 그는 12월 11일까지 김선종에게 귀국을 종용했다. 'PD수첩'은 폐지되고 제보자는 온갖 비난 속에 고통받았을 것이다. 어떤 생명과학자들은 회의 속에 피펫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마도 해외에서 먼저 조작을 밝혀 나라 전체가 망신당하는 방식으로 진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제서야 서로 네 잘못이라고 이전투구를 벌였을 것이다.
권한을 가진 이들이 할 일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민들이 아무리 장갑차를 막고 있어도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권한과 책임을 쥔 이들의 부패와 무책임은 심해진 것 같다. 2024년 12·3 계엄의 밤 대통령 앞에 몸을 내던져 선포를 막은 국무위원은 없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포고령 문서를 들고 논의해 놓고는 ‘계엄을 반대했고 포고령은 본 기억이 없다’고 천역덕스럽게 거짓말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때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국민에 총 겨눈 대통령 탄핵을 훼방놓았다.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떤가.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장소를 몇 번씩 바꿔 표결을 방해했다. 1년이 지나 장동혁 당대표는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는 말했다. 계엄 회의를 거부하고 사표를 쓴 류혁 법무부 감찰관만큼의 자각과 책임감도 없는 그들이 총리였고 장관이었고 국회의원이다.
2025년 11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함께 CCTV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CCTV 영상에서 '계엄 문건을 본 적도 없다' 등 한덕수의 주장이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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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뿐만 아니다. 지금의 대학이라면 황우석 논문을 과연 조사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윤석열 정부 때 영부인 김건희의 논문 표절에 대학들은 입을 다물었다. 국민대는 2022년 8월 ‘member Yuji’ 같은 문제가 있었던 김건희의 논문 4편에 문제가 없다고 판정했다. 숙명여대는 석사논문 표절 의혹 조사에 3년 반을 끌다가 정권이 바뀐 2025년 6월에야 학위를 취소했다.
2025년 한국은 권한 있는 이들이 할 일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된 듯하다. 엘리트 카르텔의 부패가 심각하다.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형 부패에서는 벗어났지만 기득권 엘리트층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특권과 이익을 독점하는 일이 곳곳에서 보인다.
황우석 사태 때도 그를 비호한 관료-과학자-언론이 있었다. 연구비를 지원한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생명안전의 최후의 보루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정무적 최고 책임자인 청와대 모두 아무 것도 안 하거나 사실을 덮으려 했다. 그래도 엘리트의 자정능력이 있었다. 서울대가 그랬다. 소장파 교수들부터 총장까지 서울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알았다. 비겁하게 회피하지 않았고 무능하게 외면하지 않았다. 권력과 대중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서울대 검증 결정의 효과
2005년 12월 7일 오전 황우석 교수는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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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저녁 나는 서울대와 KAIST의 교수 여러 명을 취재해서 논문 검증 건의 기사를 쓰고는 기사 때문에 역풍이 불어 검증이 좌초할까 봐 걱정했다. 기사를 송고한 후 황우석 사건 전담 데스크였던 한기봉 부국장에게 이를 보도하는 게 맞는지 물었다. 그는 “기사의 파장을 다 예단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건 이 사태에서 아주 중요한 전기가 될 테니 기사를 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후 며칠동안 나는 왜 서울대가 조사해야 하는지, 우리나라에 없었던 연구진실성 제도가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썼다.
서울대는 다소 돌아서 갔다. 노정혜는 12월 8~9일 고교 동문인 안규리1에게 ‘황우석이 조사를 자청하도록 설득하라’고 압박했다. 정운찬은 12월 9일 황우석을 병문안 가서 조사를 권했다. 이날 사이언스는 황우석에게 사진 중복·DNA 지문 의혹에 해명을 요구했고, 피츠버그대는 제럴드 섀튼2 조사에 착수했다. 12월 11일 오전 황우석이 노정혜에게 전화를 했다. 이날 오후 서울대는 황우석의 조사 요청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논문 검증을 전격 발표했다.
한기봉의 판단은 정확했다. 서울대의 검증 건의와 결정은 사태를 반전시킨 중대한 기점이었다. 확신에 차 황우석을 지지하고 ‘PD수첩’에 돌 던지던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DNA 불일치, 시약 논란 같은 과학적 팩트는 대중의 판단에 큰 영향이 없었다. 정보는 너무 많고 복잡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평소의 평판, 출처의 권위, 믿을 만한 주변인 같은 인지적 지름길을 사용한다. 이 모든 것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서울대의 권위였다. 서울대가 움직이자 언론 보도 톤 또한 상당히 차분해졌다. 황우석 지지의 광풍에 비로소 제동이 걸렸다.
서울대 검증 결정은 또 다른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 바로 황우석 사단 내부의 균열이었다. 어마어마한 폭로가 가장 든든했던 협력자로부터 나올 참이었다.
●자료: 고원태 '황우석의 과학적 실천과 연구윤리'(2025년 2월 서울대 이학박사 학위 논문), 2025년 12월 7일 이현숙 인터뷰, 2025년 12월 8일 정운찬 인터뷰, 2005년 12월 7일 최준호 인터뷰
●'황우석 백서: 왜 우리는 선동에 무력한가' 잠시 휴재했다가 12월 22일(월)에 돌아옵니다.
- ① 2025, 왜 다시 황우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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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황의 반격: YTN 청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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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석 백서] "어떻게 이런 사기를..." 충격과 분노로 밤샌 한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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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⑩ 적대적 정파성, 언론의 타락
- • [황우석 백서] 제보자 사냥, 사상 검증... 광풍의 중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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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⑪ MBC 항복한 그날 밤
- • [황우석 백서] 모든 걸 휩쓴 YTN 폭풍... 벼랑 끝에서 진실의 응전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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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⑫ 브릭이 찾은 조작 증거들
- • [황우석 백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숨은 영웅들의 싸움 촉발한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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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⑬ 서울대 검증 결정 막전막후(계속)
1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로 황우석 팀 대변인 역할을 했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신장내과 전문의이자 서울대 명예교수.
2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 황우석을 형제라 일컬은, 해외의 유력자 우군이었다. 2006년 2월 피츠버그대 조사위원회는 섀튼이 날조 등 연구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논문 로비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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