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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5 (목)

    이슈 프로축구 K리그

    그라운드 잃어가는 K리그 유망주들... 2군 리그, 4년째 안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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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1, 차기 시즌 U-22 의무 출전 사실상 폐지
    2군 리그인 'R리그'도 2022년 이후 미개최
    "한국 축구 미래 불투명" 우려 목소리에도
    각 구단 "B팀 운영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국일보

    양민혁이 강원FC 소속이던 지난해 10월 20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경기 도중 피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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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 유망주들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에서 22세 이하(U-22) 선수 의무 출전 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기존 2군 무대인 R리그(Reserve League) 부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각 구단들이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영건'들의 기량 유지를 위한 논의가 공회전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0월 이사회에서 U-22 의무 출전 규정에 변화를 줬다. 기존에는 1부 리그에서 U-22 선수가 1명 이상 선발 출전하지 않으면 교체 가능 인원을 2명으로 제한했지만, 내년부터는 U-22 선수의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경기 중 5명을 교체할 수 있게 했다. 사실상 해당 규정이 폐지된 셈이다.

    이 규정은 유망주들에게 실전 기회를 주기 위해 2013년 도입됐다. 이후 10년 넘게 유지되며 여러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쳤지만, 현장에서는 매번 “득보다 실이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어린 선수들의 ‘강제 투입’으로 경기력이 저하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팀들은 교체카드 5장을 확보하기 위해 U-22 선수를 10분 만에 교체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결국 연맹은 현장 요청을 반영해 결단을 내렸지만, 모든 축구인들이 이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건 아니다. 유망주들이 실전을 통해 성장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한국 축구의 중장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9년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결승으로 이끌었던 정정용 김천 상무 감독은 "축구 선수에겐 18~22세가 선수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이 연령대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줄면, 성장이 정체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우려를 덜어낼 대안 중 하나가 R리그의 부활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R리그는 1990년 ‘2군 리그’라는 명칭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이후 수차례 폐지와 재출범을 반복했다. 그만큼 리그 유지에 어려움이 크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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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최범경(왼쪽)과 안산 그리너스에서 뛰던 홍재훈이 2018년 4월 3일 안산와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R리그에서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한국축구연맹 제공


    한 K리그 구단 관계자는 "선수를 선발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구단들이 (R리그에 참여할) B팀(2군)을 운영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역시 "각 구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다 보니 리그가 활성화되지 않고, 이는 다시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로 이어진다"며 "악순환에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R리그는 가장 최근인 2022시즌 이후 최소 팀 수(8팀)를 채우지 못해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올해도 차기 시즌 시행을 위해 각 구단에 R리그 참여 의사를 물었는데, 8팀을 채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손을 놓고 있는 건 지나치게 소극적인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축구인은 "K리그는 지금도 다른 리그와 비교해 젊은 선수들의 입지가 좁은 편인데, 현재 추세라면 이들의 출전 시간은 전 세계 리그 중 최하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제축구연구소(CIES)가 지난 10월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 시즌 K리그1에 소속된 21세 이하(U-21) 선수들의 출전 시간은 전체 선수단 출전 시간의 6.4%에 불과했다. 이는 분석 대상 55개 리그 중 50위 수준이다. 1위 세르비아(26.9%), 2위 덴마크(23.0%), 3위 슬로베니아(22.6%)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심지어 프랑스 프로축구는 1부인 리그1(20.3%)과 2부인 리그2(20.0%) 모두 U-21 선수들의 출전시간 비율이 20%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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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제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2019년 정정용호와 2023년 김은중호가 U-20 월드컵에서 각각 준우승과 4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린 선수들이 그나마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라며 "현 추세라면, 앞으로 오현규(헹크) 양현준(셀틱) 양민혁(포츠머스)처럼 어린 나이에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축구인들은 현행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보다 정교한 행정의 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구단 관계자는 "B팀은 K3 또는 K4 리그에 참가할 수 있지만, 구단 입장에서 딱히 실질적인 이득이 없어 대다수 구단이 B팀 운영 자체를 안 하고 있다"며 "구단 입장에서는 결국 B팀을 활발하게 운영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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