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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이 봄에 '꽃씨' 선물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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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려나 보다. 아니, 골퍼의 마음속엔 이미 봄이다. 겨우내 가둬 두었던 마음은 이미 필드로 향해 있고, 꼼지락거리며 싹이 돋아나고 있다. 삼월이어서일까. 양지바른 골프장 홀 주변에 여린 녹색의 잔디가 나오고 있다. 겨우내 키운 팬지꽃이 홀 주변 화단에 심겨지고 있었다.
    이젠 앞가슴 단추를 한두 개 정도 풀어도 괜찮을 만큼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런데 꼭 이맘때가 되면 '봄과 같은 친구'가 생각난다. 골프를 자주 함께 치는 후배인데 자신은 골프를 통해 급한 성질이 누그러지고 보다 감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친구다. 골프장에 오면 신나서 애교도 부리고 말이 많던 친구가 10여 년 전 3월 어느 날 라운드를 하는데 평상시와 달리 말이 없었다. 골프도 썩 집중하지 못하고 공도 생각이 많은 듯 좌우고저로 흔들렸다.

    "무슨 일이야?"라고 말하니 "형! 아까 로비에서 첫사랑을 만났어!"라고 답했다. 그 차분한 목소리에는 뭔가 아련함이 깔려 있었다. 그리곤 필자에게 "형! 샤프란 꽃 알아?"라고 물어 "어, 내가 좋아하는 꽃이야. 옷 세제로도 나왔잖아."라고 했다. 그 후배는 그 첫사랑과 결혼까지도 생각했었는데 그 여자 친구에겐 다른 약혼자가 있었고 이별 선물로 받은 것이 바로 '샤프란 꽃씨'였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20년이 지나 그것도 골프장에서 만났다. 샤프란 꽃의 전설처럼 둘은 너무 늦은 사랑, 애틋하고 이뤄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했기에 더 간절하고 지금까지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후배는 그래서 지금도 샤프란 세제와 골프장에 핀 샤프란 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후배는 이별보다도 더 아픈 것은 왜 하필 '샤프란 꽃씨'를 주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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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의 참 숭고한 첫사랑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도 이별 선물로 꽃씨가 아닌 꽃을 주었다면 지금까지도 기억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리워만 하다가 끝내 추억으로 묻히고 마는 것이 첫사랑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그런 아픈 사랑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첫사랑을 골프장 로비에서 마주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서로 낯설면서 놀라고, 설레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아득할 것이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현기증과 심장이 밖으로 나오려 했을 것이다.

    후배는 '혹 내가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오늘 옷은 잘 입고 있었나, 혹시 얼굴엔 주름이 많이 잡히지 않았나'하는 등등의 생각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첫사랑 시절 함께 듣던 이문세의 '옛사랑' 노래를 들으면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간 후배가 장문의 톡을 보내왔다.

    "형, 그런데 말이야. 첫사랑과 헤어진 이유가 가난하고 편모슬하 때문이었어. 그래서 정말 하늘조차 볼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고 골프장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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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고, 그리고 골프를 칠 만큼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면 그런 동기를 만들어 준 그 친구가 더 고맙더란다. 집으로 돌아와서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느낀 감정은 첫사랑의 설렘보다는 '샤프란 꽃씨'에 대한 의문이었다는 것이다. 샤프란 꽃말을 찾아보고 곱씹으면서 자기도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시처럼 전쟁 같은 삶을 살 수 있었기에 오늘 그 첫사랑과의 만남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추신에 만약 내가 그에게 꽃씨를 줄 수 있다면 '히아신스 꽃씨'를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히아신스 꽃말이 '마음의 기쁨, 승리', '진실한 사랑', '변함없는 마음'이라면서.

    그래서일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특히 골프장 양지바른 곳에서 연둣빛 싹이 틀 때면 후배의 첫사랑 스토리텔링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고, 따뜻한 눈빛이고 싶고, 추억이 되고 싶다면 이 봄에 꽃집에 들러 꽃말 가득한 꽃씨를 구입해 함께 라운드한 친구에게 하나씩 선물하는 것을 권해 본다. 적어도 꽃씨를 뿌려 물을 주고 싹이 나서 꽃피우고 질 때까지는 '나'를 생각하지 않을까.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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