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나 가능한 멋진 샷”
“조코비치 빨아들여” 외신도 감탄
승리 후 장내 인사 시간엔
“한국서 보고 계신 팬에 감사”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박수갈채
정현이 22일 호주오픈 16강에서 세계 톱랭커 노박 조코비치를 누르며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킨 뒤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멜버른=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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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22ㆍ세계 랭킹 56위)에게 ‘유망주’라는 타이틀은 이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정현이 22일 호주오픈 16강에서 노박 조코비치(31ㆍ세르비아ㆍ14위)를 세트스코어 3-0으로 꺾자 외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터는 “정현이 전 세계랭킹 1위 조코비치가 구사하는 샷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고 평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홈페이지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타일 테니스다. 게임에서나 가능한 수준의 멋진 샷들이 나왔다“고 극찬했다.
정현은 경기를 압도했다. 물론 팔꿈치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코비치가 허리 통증까지 안고 있어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AFP 통신도 “조코비치는 공을 향해 팔을 뻗을 때 통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로저 페더러(37ㆍ스위스ㆍ2위), 라파엘 나달(32ㆍ스페인ㆍ1위), 앤디 머레이(31ㆍ영국ㆍ19위)와 함께 남자 테니스를 지배해온 선수다. 역대 개인 최고 세계랭킹이 44위에 불과한 정현이 10년 넘게 ‘빅4’ 중 하나로 군림한 조코비치를 완파한 건 대회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박용국 NH농협 스포츠단장은 “정현이 절정에 올랐다. 지난 해 우승(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파이널스) 이후 자신감이 붙으며 체력과 정신력이 더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정현은 세계 톱 랭커들과 싸우며 더욱 진화했다. 이번 대회 32강에서 세계 랭킹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ㆍ독일)의 강력한 서브를 받아본 그에게 조코비치의 서브는 두렵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팔꿈치 부상 후 서브의 속도보다 구질 변화로 승부를 보려 했고 정현은 어렵지 않게 받아넘겼다. 또한 정현은 약점으로 꼽히던 서브와 포핸드에서 밀리지 않고 랠리마다 포인트를 따내 조코비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박 단장은 “2년 전(2016년 1월) 호주오픈에서 정현을 3-0으로 가볍게 제압할 때 조코비치는 1~2단계 업그레이드된 정현 같았다. 하지만 이제 정현이 조코비치를 능가하는 만능형 선수가 된 느낌이다. 정현이 세계정상권인 건 확실하고 이제 어디까지 올라갈지가 기대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조코비치를 비롯해 페더러와 나달, 머레이는 모두 서른을 넘었다. 테니스계가 이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스타 탄생을 기대하는 가운데 정현이 강력한 후계자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테니스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정석진 씨는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 출신이고, 형 정홍(25)도 실업 선수로 활약 중이다. 특히 안경은 정현의 트레이드 마크다. 어릴 적 고도근시와 난시로 고생한 그는 아버지 권유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테니스 코트에서는 눈에 좋은 초록색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도 정현은 시력교정수술 대신 안경을 고집한다. 덕분에 외국 언론으로부터 ‘교수님’ ‘아이스맨’이라는 별명도 얻기도 했다.
정현이 승리한 뒤 코트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하고 있다. 멜버른=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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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가 확정된 뒤 코트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한 정현은 “조코비치는 어릴 때 내 우상이었다. 그를 따라 한 덕분에 (날카로운 샷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3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대결 끝에 힘겹게 따냈고, 2세트도 게임스코어 7-5로 힘겹게 잡은 것에 대해서는 “조코비치보다 젊기에 체력에 문제가 없었다”고 여유도 보였다.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말로 인사할 기회를 주자 그는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계신 팬 분들께 감사하다”며 “아직 안 끝났다. 수요일(24일 8강전)에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코트를 가득 메운 팬들은 대부분 정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자신 넘치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정현의 8강 상대는 테니스 샌드그렌(미국ㆍ97위)이다. 지난 9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ATP 투어 ASB클래식 1회전에서 둘이 맞붙어 정현이 2-1로 이긴 적이 있다. 만약 샌드그렌까지 이기면 정현은 준결승에서 페더러와 또 한 번 ‘꿈의 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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