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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리버풀(영국), 글 한준 기자, 영상 배정호 기자]=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템포가 빠르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중계 방송으로 본 지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됐고,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것도 여러 번인데, 4일(현지 시간)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 토트넘 홋스퍼의 경기가 펼친 속도감은 놀라웠다.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경기였다. 전반 3분 만에 모하메드 살라가 선제골을 넣은 이후 정신 없이 이어진 공방전에 몰입하다 전광판의 시계를 봤더니 38분쯤을 지나고 있었다. 피치와 관중석 사이가 매우 가까운 영국 경기장 특유의 매력에, 영국 내에서도 응원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안필드는 축구의 진수를 선사했다. 축구 종주국이 전해 주는 ‘원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리버풀과 토트넘의 경기는 농구 경기를 보듯 공수 전환이 빨랐다. 전반전에 두 팀의 스로인으로 경기를 다시 전개할 만한 상황이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멈추지 않고 플레이가 이어졌다. 경기 종료 후 판정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경기”라고 했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관전자들에겐 어마어마한, 훌륭한 경기였다”고 자평했다.
경기를 취재한 영국 기자들도 “미친 경기(crazy game)”라는 말을 연발했다. 이날 한 차례 페널티킥을 놓친 뒤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 골을 페널티킥으로 완성하며 프리미어리그 100호 골을 넣은 토트넘 공격수 해리 케인은 카메라를 보고 “미쳤다(crazy)!”고 외쳤다.
◆ 스로인이 거의 없었던 속도전, 농구 경기 방불케 한 전반전
전반전을 마치 후반전이 없는 것처럼 사력을 다해 뛴 두 팀은 후반전에 조금 페이스가 떨어졌으나 추가 시간을 포함한 경기 종료 전 마지막 15분간 3골이 쏟아져 나오는 극장 승부를 벌여 5만 3,213명의 입장객과 취재진을 매혹했다.
안필드의 티켓은 이미 매진. 취재석도 만석이었다. BT 스포츠 해설 위원 마크 슈워처는 스포티비뉴스와 마찬가지로 책상이 없는 옵저버석을 받을 정도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취재석 바로 아래 관중석에서, 리버풀 홈 팬들의 응원을 더 생생하게 느끼며 지켜본 리버풀과 토트넘의 경기는 영국인들이 왜 축구를 인생의 오락으로 삼는지 알 수 있게 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온 ‘비엘시 스타’ 포체티노 감독,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게겐 프레싱을 갖고 온 클롭 감독이 지휘한 두 팀의 대결은 영국식 속도감에, 치밀한 빌드업, 과감한 중앙 공격, 빠른 측면 공격이 뒤섞여 최고 수준의 축구를 선사했다.
프리미어리그는 본연의 투박한 맛뿐 아니라, 최고급 기술과 창조성을 더해 축구 종목 자체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자본과 기획력을 만나 명품을 제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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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트넘의 투톱, 리버풀의 투톱, 포체티노와 클롭의 유연한 전술 변화
토트넘은 두 센터백이 좌우로 넓게 벌리고 무사 뎀벨레와 에릭 다이어가 중원에서 빌드업을 하며 촘촘한 경기를 했다. 풀백이 측면을 점유하고, 손흥민은 케인과 투톱을 이뤘고, 그 뒤에 델레 알리와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중앙 지역에 포진해 리버풀의 전략에 대응했다.
믹스트 존에서 만난 손흥민은 맨유전과 다른 임무에 대해 “상대에 부담스러운 움직임을 주려 했다”며 톱에 올랐지만 직접 골을 노리는 것 외에 최종 수비 라인을 흔들어 놓는 오프 더 볼에 집중했다고 했다. 실제로 손흥민은 전후진과 측면 커트 아웃, 빠른 타이밍의 전환 패스로 빌드업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완벽한 9번 공격수로 불리는 케인의 컨디션이 떨어진 것이 토트넘의 아쉬움이었다. 주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격전을 치른 뒤 피로 때문인지 케인의 순발력이 떨어졌고, 이른 시간 선제골을 내주며 초반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
리버풀은 1월에 토트넘보다 굴곡진 시간을 보냈다. 맨체스터 시티에 프리미어리그 첫 패를 안긴 이후 스완지 시티에 0-1, 웨스트 브로미치와 FA컵 경기에서 2-3으로 졌다. 허더즈필드와 리그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기세를 회복한 리버풀은 마네, 피르미누, 살라의 스리톱이 빠르면서도 기술적인 플레이로 토트넘의 뒤 공간을 공략했다.
두 팀 모두 전술적으로 유연했다. 토트넘의 공격 4중주는 투톱과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4인 블록을 만들었다가 케인 원톱에 3명의 2선 공격으로 변형했고, 후반전에 센터백 다빈손 산체스를 빼고 에릭 라멜라를 투입한 뒤에는 빌드업 미드필더 에릭 다이어가 센터백으로 내려오고 델레 알리가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와 대형을 유지하면서 공격성을 높였다.
리버풀의 제임스 밀너는 중앙 우측 미드필더와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를 오가며 리버풀이 4-3-3에서 자연스럽게 4-4-2로 전환하게 했다. 토트넘이 후반전에 기세를 올리자 클롭 감독은 밀너를 빼고 센터백 조엘 마티르를 투입해 5-3-2 대형으로 수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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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체 전략과 뒷심에서 이긴 토트넘, 승리한 것 같은 무승부
두 팀의 기술 대결, 속도 대결, 전술 대결이 치열했다. 교체 전략에서는 포체티노 감독이 웃었다. 후반 34분 투입한 빅터 완야마는 투입 1분 만에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을 터뜨렸다. 체력이 떨어진 빌드업 미드필더 뎀벨레를 빼고 투입한 완야마는 리버풀의 역습에 기민하게 대응한 것은 물론, 이날 경기에 나온 가장 환상적인 골로 제 몫을 다했다.
클롭 감독의 마지막 교체는 역효과가 됐다. 전방 수비 숫자가 줄어들어 토트넘이 쉽게 리버풀 수비 진영으로 진입하도록 만든 실패한 수가 됐다. 혼란한 문전은 후반 42분과 후반 추가 시간 5분 케인에게 두 차례나 페널티킥이 주어지게 했다. 첫 번째 페널티킥을 루카스 카리우스가 선방했으나, 케인은 두 번 실패하지 않았다.
꽤 험악한 인상의 리버풀 팬들은 손흥민의 플레이에 반응하는 한국 취재진을 쳐다봤다. 리버풀이 흐름을 주도하던 전반전에는 괜찮다며 웃었지만 리버풀이 진 것 같은 무승부로 경기가 끝난 뒤에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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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롭 감독은 두 번의 페널티킥 판정에 이례적으로 흥분하며 경기를 마친 뒤 심판에게 다가가 따져 물었고, 기자회견에서도 오심이라고 지적했다. 믹스트 존에는 두 골을 기록하며 멋진 경기를 한 모하메드 살라가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지나쳤고, 비르힐 판데이크는 다시 페널티킥 판정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경기 후 손흥민을 마주친 클롭 감독은 진한 포옹으로 축하를 건넸고, 기자회견장을 떠날 때는 평소의 미소를 되찾고 다음 경기를 기약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리미어리그 100호 골을 넣은 뒤 플래시 인터뷰의 주인공이 됐고, 손흥민은 에릭센과 함께 웃으며 믹스트 존에 나오다 한국 취재진을 보고 멈춰 섰다. 연이은 빅 매치에서 득점은 못했으나 팀 플레이 측면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인 손흥민은 여유 있게 인터뷰에 응했다. 승리한 것 같은 무승부에도,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포체티노 감독과 손흥민 모두 입을 모았다.
현재 순위는 리버풀이 3위, 토트넘이 5위. 안필드에서 토트넘은 2011년 이후 7년째 이기지 못하고 있지만, 안필드에서 희망을 품은 쪽은 토트넘이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의 저력에 대해 묻자 “우리 팀은 젊은 게 강점”이라며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자신했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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