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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조선일보 '민학수의 All That Golf'

[민학수의 All That Golf] 박성현의 멍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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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성현(26)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멍때리기'를 좋아한다. 대부분 시간을 체력 훈련과 골프 연습에 쏟아붓고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좋은 글귀를 찾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에 쓴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도 모르게 멍때린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다'는 뜻의 은어인 멍때리기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혹사당하는 인간의 뇌에 휴식과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 예전과 다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자 골프 세계 정상까지 현기증 나는 속도로 달려온 박성현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

박성현은 5년 전 한국 무대에서도 컷을 통과하기 버거웠던 평범한 선수였다. 한 홀에서 OB(아웃오브바운즈)를 3방씩이나 내는 가다듬어지지 않은 장타자였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을 고치려 훈련 도중 만난 모르는 사람과 라운드를 하고 일부러 집까지 놀러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 비하면 손이 부르틀 정도로 연습해 샷을 고치는 건 그의 성격상 더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성현은 그제 HSBC위민스월드챔피언십에서 예전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이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후반 집중력에서 앞서 세계 1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과 3위 이민지(호주)를 제칠 수 있었다. 드라이버부터 아이언, 퍼팅까지 샷도 한결 더 다듬어져 있었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박성현은 지난 2월 골프용품 업체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난 타이거 우즈의 덕을 꼽았다. '우즈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아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상을 만난 감격이 심리적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박성현은 지난겨울 하루 4~5시간씩 체력 훈련을 했다. 저녁에 아무리 늦게 자도 오전 다섯시쯤이면 눈을 떠 한 시간 스트레칭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샷 훈련과 라운드로 실전 감각을 가다듬고 저녁이 되면 피지컬 트레이닝을 했다. "좋아서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는 스윙 코치 없이 혼자 훈련한다. 코치의 조언에 의지하다 자신의 감(感)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 LPGA 투어에 데뷔한 2017년 잠시 유명 교습가 브라이언 모그에게 배우다 그만두었다. "전반적으로 스윙을 가다듬어보자"는 권유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드라이버 입스(yips·샷 불안 증세)를 혼자 헤쳐나온 경험이 있다. 자신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스윙을 찍어 놓은 동영상을 보며 무한 반복 훈련을 했다. 그가 보낸 지난 5년을 생각하면 멍때리는 습관이 정말 도움이 될 것이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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