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하임컵 역전 우승과 함께 은퇴
무명 시절 어려울 땐 LG서 후원
매너 없는 경기, 한국선수에 악명
솔하임컵 유럽 대표로 출전한 페테르센(가운데)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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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5승의 수잔 페테르센(38·노르웨이)이 16일(한국시각) 은퇴를 발표했다. 페테르센은 이날 스코틀랜드 퍼스 인근 글렌이글스 골프장에서 열린 유럽-미국 여자골프 대륙 대항전 솔하임컵에서 대역전극을 이끈 뒤 “앞으로 나를 솔하임컵에서 볼 수 없다. 다른 골프 대회에도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슬로에서 태어난 페테르센은 2001년 유럽 여자 투어에서 첫 우승했고, 2003년 LPGA 투어에 진출했다. 페테르센은 무명 시절 한국 기업인 LG 모자를 썼다. 이처럼 어려울 때 돈을 대준 건 한국이었지만, 한국 골프선수들과는 유난히 악연이 많다.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페테르센은 박세리와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서 격돌했다. 당시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박세리는 “사막의 열풍보다 페테르센의 슬로플레이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리듬이 끊겼다”고 회상했다. 두 선수 모두 부진했다. 박세리는 결국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고, 이 우승컵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페테르센은 그로부터 한 달 후 첫 우승했다. 연장전 상대는 한국 이지영이었다. 대회는 버지니아주 킹스밀 리조트에서 열렸다. 분위기가 이지영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회 한 달 전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계 조승희씨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지영은 뭔가 불안했고 서둘렀다. 연장전에서 버디 퍼트가 들어가지 않았고, 실망해 1m짜리 짧은 퍼트를 마크하지 않고 그냥 쳤는데 또 들어가지 않았다. 운좋게 첫 우승한 페테르센은 한 달 후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다시 챔피언이 됐다. 한국 신인선수 민나온에 역전 우승했다.
한국 선수들은 ‘페테르센이 특히 한국 선수와 경기할 때 일부러 소리를 지르는 등 상대의 기를 죽이려 했다’고 여겼다. 그해 페테르센은 한국에서 열린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페테르센이 “바람이 많이 불어 경기할 수 없다”고 주장해, 최종라운드를 하지 않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경기를 보고 싶어 하던 한국 갤러리의 불만이 많았다. 페테르센은 그해 5승을 했다. 안니카 소렌스탐, 카리 웹을 넘어 세계 2위까지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살았던 페네르센은 박세리, 이지영과 이웃이었다. 호숫가에 나란히 선 세 채 중 가운데가 페테르센, 양 옆이 박세리, 이지영 집이었다. 페테르센은 옆집 페인트 색깔까지 많이 간섭했다고 한다.
2015년 솔하임컵은 페테르센 때문에 시끄러웠다. 상대가 짧은 퍼트를 남겼을 때 페테르센이 그냥 옆 홀로 걸어갔다. 상대인 한국계 엘리슨 리는 컨시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해 공을 집어 들었다. 페테르센은 “컨시드를 준 적 없다”고 말했다. 일부러 컨시드를 받은 것처럼 느끼게 한 ‘함정 아니었냐’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팀 동료들도 그를 맹비난했다.
컨시드 사건 이후 페테르센은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2017년 결혼과 출산으로 대회 참가도 뜸했다. 출산 공백으로 이번 솔하임컵에는 선수가 아니라 바이스 캡틴으로 출전하려다, 동료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선수로 출전했다. 페테르센은 최종일 마지막 선수로 나가 승리했고, 대역전극의 주역이 됐다. 승리도 승리지만, 가장 멋진 순간 은퇴를 선언해 2015년 불명예를 다소나마 지웠다.
이지영이 2007년 킹스밀 연장전에서 이겼다면 어땠을까. 이지영이 한 시즌 5승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지영은 “악연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며 웃었다. 페테르센은 LPGA 투어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떠나게 됐다.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빈다. 그나저나 무명 시절 도와준 LG 제품은 사용하고 있는지는 궁금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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