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스포츠 인사이드]
다시 주목 받는 NBA 탱킹 전략
미 프로농구(NBA) 다음 시즌 최고 신인 후보로 꼽히는 듀크대 쿠퍼 플래그(왼쪽). NBA 팀들이 ‘탱킹’을 통해 영입 경쟁을 벌이는 대표적 스타로 꼽힌다. 과거 LA 레이커스 르브론 제임스(오른쪽 위)와 샌안토니오 스퍼스 빅토르 웸바냐마(오른쪽 아래)도 비슷한 사례였다. /AFP·뉴스1·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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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일부러 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미국 프로 농구(NBA)에서 나온 얘기다. NBA는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수준 경기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그런 전장에서 일부 팀은 의도적으로 승리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치는 의아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탱킹(Tanking)’이라 부른다.
그 배경엔 NBA 신인 선발 구조, 하위권 팀들에 다음 시즌 신인 선발 상위 지명권을 주는 혜택이 깔려 있다. 순위가 낮을수록 신인 선발 우선권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러다 보니 다음 시즌 대상 신인 선수 중 초특급 유망주가 있을 땐 올해는 포기하고 해당 선수를 잡아 내년에 도약하자는 전략적 사고가 작동한다.
지난 2일(한국 시각) 유타 재즈는 LA 레이커스와 벌인 경기에서 경기 종료를 9초 남기고 1점 뒤진 시점에 콜린 섹스턴이 결정적 슛을 날렸다. 그런데 재즈 윌 하디 감독이 돌연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졌으나 문제는 슛이 들어갔다는 것.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 타임아웃으로 무효가 됐다. 재즈는 결국 레이커스에 1점 차로 졌고 “일부러 지려고 그랬느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결국 “쿠퍼 플래그를 잡으려고 ‘탱킹’을 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쿠퍼 플래그(18)는 대학 리그 듀크대에서 활약 중인 백인 선수. 키 208cm에 공격·수비 모두 특출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어 “케빈 듀랜트의 득점력과 래리 버드의 BQ(농구 IQ)를 겸비한 선수”라는 평을 받는다. 내년 열리는 신인 선발 1순위가 확실시된다. 플래그가 1순위로 뽑힌다면 미국 출신 백인 선수가 1순위로 선발되는 건 1977년 켄트 벤슨 이후 48년 만. 이 대어를 차지하려고 시즌 초반부터 ‘조기 탱킹’에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는 팀들이 속출하고 있다. 리그 전체 28위 재즈(5승 18패)를 비롯, 29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5승 20패)와 최하위 워싱턴 위저즈(3승 19패)가 ‘플래그 영입 경쟁’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탱킹은 사실상 태업에 가깝다. NBA 사무국은 경기 흥미를 떨어뜨리는 탱킹을 제어하기 위해 고심하지만 과거 여러 팀이 탱킹을 통해 수퍼스타 선수를 잡아 팀을 재정비한 뒤 우승권으로 끌어올린 ‘성공 사례’가 있어 관리가 쉽지 않다.
휴스턴 로키츠는 1984년 당시 대학 농구 최고 센터 하킴 올라주원(61·은퇴)을 신인 선발 1순위로 낚아챘다. 이를 위해 시즌 후반 일부러 연패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1997년 팀 덩컨(48·은퇴)을 노리고 20승 62패를 감수한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3년 르브론 제임스(40)를 노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17승 65패)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2013~2016년 4시즌 동안 ‘더 프로세스(The Process)’로 미화한 탱킹 전략을 고수했다. 4시즌간 승률이 0.228(75승 253패). 대신 그 대가로 조엘 엠비드(30)와 벤 시먼스(28) 등 초대형 신인들을 데려와 강호로 거듭났다. 2023년 프랑스 출신 ‘외계인’ 빅토르 웸바냐마(20)를 둘러싼 경쟁에서 승리한 스퍼스(22승 60패)도 다르지 않았다.
NBA 사무국은 탱킹 방지 차원에서 2019년부터 신인 선발 체계를 손질해 무조건 최하위 팀에 우선권을 주기보단 하위권 세 팀이 나란히 14% 1순위 추첨 확률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바꿨지만 하위권 팀들은 큰돈 안 들이고 유망 신인을 뽑을 수 있는 탱킹 전략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연고지 규모가 작은 이른바 ‘스몰 마켓’ 팀들에 탱킹은 생존 전략으로 치부된다. 레이커스(LA)나 셀틱스(보스턴) 같은 거대 도시 ‘빅 마켓’ 팀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비싼 돈을 주고 FA(자유 계약 선수) 시장에서 빅 스타를 데려올 수 있다. 하지만 재즈(유타), 펠리컨스(뉴올리언스) 같은 스몰 마켓 팀들은 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량 신인 선발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플래그나 웸바냐마, 르브론 같은 초대형 신인이 나오는 해에 탱킹이 두드러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탱킹(Tanking)
사전적으로 ‘실패·패배’란 뜻. 프로스포츠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이 어려워진 하위권 팀이 향후 신인 선발에서 상위 순번을 갖기 위해 해당 시즌 성적을 일부러 포기하는 운영 전략을 가리킨다.
[양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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