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을 차지한 배소현. 지난해까지 우승은 물론 준우승조차 없었지만, 올해 날개를 펴며 늦깎이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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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박물관의 ‘사유의 방’에서 한참을 있었어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생애 첫 번째 우승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 그동안 치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만 154개. 누구보다 오래 기다려서였을까. 석 달 뒤 또 다른 우승이 찾아왔고, 2주 뒤에는 3번째 열매가 화려하게 영글었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공동 다승왕을 차지한 배소현(31)을 최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휴식기를 맞아 모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배소현은 “대회 기간에는 오전 4~5시부터 일어나는 날이 많고, 경기가 없더라도 훈련을 위해 일찍 출근하곤 한다”면서 “지금은 연습 일정이 빡빡하지 않아서 8시까지 푹 잔다.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칼로리 높은 음식도 마음껏 즐기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2012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우승은커녕 준우승조차 없던 배소현은 자신의 154번째 대회였던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처음 정상 등극의 감격을 맛봤다. 이어 8월 더헤븐 마스터즈와 9월 KG 레이디스 오픈을 연달아 제패하면서 KLPGA 투어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박지영(28)과 이예원(21), 박현경(24), 마다솜(25)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공동 다승왕을 차지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최근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배소현.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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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꽃을 피운 배소현의 성장 스토리는 이제 골프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렀던 아버지 배원용 코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했던 배소현은 선수 생활을 일찍 시작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정식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출발이 늦은 만큼 프로 무대 안착도 쉽지 않아 1부와 2부 투어를 오랫동안 오갔다.
이 사이 여러 차례 난관도 맞닥뜨렸다. 배원용 코치가 2018년 뇌종양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심을 겪었다. 또, 2020년에는 허리 부상이 찾아와 걷기조차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그러나 배소현은 끊임없는 재활과 훈련으로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이듬해부터는 붙박이 1부 투어 선수로 뛰면서 우승 열매의 씨앗을 뿌렸다.
배소현은 “부상 전까지는 코어를 쓰면서 스윙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픈 뒤로는 내 힘이 공까지 100% 전달될 수 있도록 스윙을 바꿨다. 정말 예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샷 하나하나를 체크하면서 나의 골프를 변화시켰다. 이 모두 하늘에서 딸을 보살펴주시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소현(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열린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한국골프기자단이 선정한 기량발전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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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성장 과정은 올해 3승의 귀중한 밑거름이 됐다. 코어 스윙을 통해 힘 전달력이 붙은 배소현의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52.21야드. 올 시즌 이 부문 톱5를 살펴보면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1위를 차지한 방신실(20·256.23야드)부터 2위 윤이나(21·254.98야드), 3위 이동은(20·254.14야드), 4위 황유민(21·253.76야드)은 모두 2003~2004년생으로 배소현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배소현은 “하루는 박현경이 나를 보며 ‘샷이 회춘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면서 “드라이버 헤드 각도가 원래 9도지만, 약간 낮춰 8.75도 정도로 조정했다. 백스핀을 2000대 초반에서 1000대 후반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되면 탄도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보통의 여자 선수들과 비교해 내 탄도가 높은 편이라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노력과 연구로 만든 비거리를 앞세워 올해 3승 고지를 밟은 배소현은 내년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인디밴드 공연과 미술관 관람 등 평소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로 하루를 채우는 중이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는 배소현은 “반가사유상이 있는 ‘사유의 방’에서 한참을 있었다.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 참 좋았다”고 말했다.
배소현이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생애 처음으로 정상을 밟은 뒤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KLP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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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현은 내년 1월 베트남 호치민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시우(43) 코치의 지도 아래 3월 초까지 구슬땀을 흘린다는 각오다.
배소현은 “이시우 코치님은 늘 ‘비거리는 늘리지 않으면 줄어든다’고 강조하신다. 내년에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임하는 대회가 3개나 되는 만큼 더욱 단단한 골프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현재 내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72위다. US여자오픈이나 살롱파스컵 같은 큰 대회를 나가려면 50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린 적중률, 특히 러프에서의 그린 적중률을 높이려고 한다. 또, KLPGA 투어에선 메이저 대회와 같은 72홀짜리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자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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