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곳곳에 잔디가 파여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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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가 그라운드 잔디 문제로 시즌 초반부터 시끌시끌하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의 부상 위험은 물론 경기력 저하로 팬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문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폭염·폭우가 이어질 여름철에 또 한 번 '논두렁 잔디'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일 프로축구 K리그1(1부) FC 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곳곳에 파인 잔디로 몸살을 앓았다. 고르지 못한 잔디 탓에 선수들은 드리블뿐 아니라 패스하는 과정에서도 미끄러져 헛발질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출신 공격수 제시 린가드(서울)는 움푹 파인 잔디에 발목이 걸려 넘어져 한동안 고통을 호소했고, 경기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가 났다는 의미의 이모티콘을 붙여 유감을 표했다.
앞서 각 구단 선수들이 얼어 있는 그라운드를 뛰다 부상을 입는 상황이 속출했다. 그러자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지난 4일 "선수들이 경기 중에 경험하는 열악한 잔디 환경에 심각한 우려를 전한다"고 호소했다. '논두렁 잔디'로 국제 경기도 치르지 못하는 판이다. 3월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경기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대신 경기 고양과 수원에서 열린다.
이에 대해 잔디 전문가들은 기후 조건과 국내 경기장 그라운드에 식재된 잔디의 특성부터 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11월 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한 K리그 그라운드 관리 심포지엄 패널로 참여했던 류주현 이앤엘 잔디연구소장은 "국내 경기장에 식재된 켄터키블루그래스는 유럽이 원산지인 한지형 잔디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철에는 잔디 고유의 품질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이 길어지면서 충분히 잔디 생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즌을 맞이했고, 결과적으로 문제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올해 프로연맹은 클럽월드컵, 동아시안컵 등 일정 때문에 개막 일정을 2월 중순으로 앞당겼다. 다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잔디 관련 제반 시설과 관리 시스템이 미흡했다. K리그 경기장 잔디 품질 개선 관련 협력 사업을 하고 있는 왕산그린의 이강군 대표는 "서울, 전주, 울산 등은 지붕이 있어 햇볕이 안 들고 통풍도 잘 안 돼 잔디를 관리하기에 여건이 좋지 않다. 토양의 배수력을 개선시키고 병충해 방지를 위한 작업도 하면서 세밀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경기장 여건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에서 잔디 관리를 위해 사용 중인 열선, 조명 등도 추위와 강풍이 이어지는 한국의 겨울, 초봄 기후 특성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잔디가 바닥에 뿌리내릴 4월에는 잠시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시즌이 한창 진행될 여름이다. 지난해 여름철 K리그와 국가대표 A매치 도중 누더기가 된 축구장 잔디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도 "원정 구장 잔디 상태가 홈보다 낫더라"고 지적했다. 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사항이 다뤄졌지만 마땅한 후속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잔디 관리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은 곳은 울산뿐이었다. 울산은 지난해 11월 잔디를 전면 교체하고 지온자동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일본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섰다.
구단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유로 운영되는 국내 축구 경기장 특성상 그라운드 잔디 문제는 어느 주체가 직접 나서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잔디 문제로 곤욕을 치른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경우 경기장 운영 주체인 서울시설공단이 문화행사 대관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그러나 관람객을 2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없는 사정을 들면서 조건부 허용으로 방침을 바꿨다. 서울시는 다음달 30일 열릴 서울스프링페스타를 그라운드 좌석을 만들지 않는 조건하에 진행한다. 무대 설치에 따른 잔디 부분 사용은 불가피하다.
류 소장은 "경기장 사용량을 줄이거나 아예 대체 구장을 마련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잔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기장은 대부분 한번 잔디를 깔면 내구 연한이 다 될 때까지 끝까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카펫이 더러워지면 교체하듯이 잔디를 소비재처럼 인식해야 한다"면서 "좋은 축구가 좋은 잔디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잔디에 문제가 생기면 좋은 경기력을 위해 전면 교체를 해야 경기장 시설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축구계에서는 유관 단체와 각 지자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머리를 맞대 잔디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K리그 지방 구단 한 관계자는 "기후변화도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잔디 문제는 리그의 성패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관계자 모두가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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