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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도쿄대첩' 때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스포츠팬들은 물론 국민들의 기억에 깊이 박힐 만한 코멘트로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스포츠 격동의 현장을 누볐던 송재익 캐스터가 18일 별세했다.
해설위원으로 그와 단짝이었던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많은 캐스터 분들과 호흡했지만 정말 프로페셔널했던 분이셨다"며 "오늘 길을 걸으면서 송 위원님(신 교수는 송 캐스터를 이렇게 불렀다)과의 많은 추억이 떠올렸다. 19일 빈소가 열리면 곧바로 조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8일 유족에 따르면 송 캐스터는 18일 오전 5시께 충남 당진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만 82세.
송 캐스터는 1970년 MBC 아나운서로 방송을 시작, 초기엔 복싱 중계를 맡았다.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고 김득구(1956∼1982) 선수의 마지막 경기였던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위성으로 받아 서울 스튜디오에서 중계했다.
이어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매번 아시아 대표로 출전하자,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5차례 월드컵의 본선 및 최종예선 중계 등을 맡아 유명세를 타고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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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채널A 여자복싱 중계를 맡기도 했던 송 아나운서는 2019년 K리그 개막을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직영으로 K리그2를 중계하면서 현장에 복귀했다. 2020년 11월21일 K리그2 27라운드 서울 이랜드-전남 드래곤즈전까지 78세 나이로 '현역 최고령 스포츠 캐스터'로 활약했다.
송 캐스터가 대한민국 스포츠 캐스터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은 때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 '도쿄대첩' 때였다.
한국은 2연승을 달린 뒤 도쿄 원정을 치렀는데 후반 들어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 38분 서정원의 동점포와 4분 뒤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 결승포가 터지면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지금도 한국 축구사에 회자될 만한 '도쿄 대첩'이 완성됐다.
이민성의 골이 느린 화면으로 리플레이될 때 송 캐스터가 "자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마디를 던졌는데 이게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 최고의 코멘트로 남은 것이다.
이 외에도 송 캐스터는 촌철살인 같은 비유적 표현으로 스포츠에 재미를 불어넣었다. 한편으론 신 교수와 호흡이 척척 맞으면서 더 송 캐스터의 코멘트도 더욱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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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첩'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기 직전 "일본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정을 다녀와서 반드시 체력이 떨어질 거다"라고 예측했던 신 교수도 당시 이민성의 골이 들어가자마자 "일본은요, 다리가 무뎌졌거든요!"라고 외쳤는데 이 코멘트 역시 국민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다.
"도쿄 대첩 시청률이 54%인가, 58%인가 그랬다. 병원에서 쓰러져 링거 맞는 분들 빼고는, 전국민이 도쿄 대첩을 보셨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은 신 교수는 "사실 송위원님하고 중계하면 내가 굉장히 긴장했다. 비유를 잘 하시는데, 나도 즉흥적으로 받아쳐야하지 않나. 처음엔 '이 분이 중계 준비하면서 이 것만 생각하고 오시나'란 생각도 했다. '축구가 좀 희화화되는 것 같다'는 말씀도 드렸다"며 "그래도 같이 중계하는 내가 뭘 받아쳐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서 호흡이 맞았고 도쿄 대첩에서 대박이 터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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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일본이 UAE 원정을 다녀와서 우리와 경기하니까 후반에 힘들 것으로 봤다. 그래서 '일본은 사우나에 다녀온 거거든요. 후반전 되면 홈 경기라고 해도 힘들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코멘트를 송 위원님이 좋아하셔서 받아주고 했다"고 했다.
신 교수는 도쿄 대첩 이듬해 열린 프랑스 월드컵 본선도 떠올렸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조별리그 2차전을 얘기했다.
당시 경기장이었던 마르세유 벨로드롬(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홈구장)에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네덜란드 관중 5만명이 들어차 응원전부터 한국의 기를 죽였던 경기였다. 한국은 결국 0-5로 대패하며 월드컵사 가장 치욕적인 하루를 남겼다.
"경기 직전 '이경규가 간다'를 찍는데 네덜란드 관중이 술에 취해서 우리에게 오길래 스코어를 물어보니 '우리가 5-0으로 이긴다'고 하더라.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든 녹화를 하고 중계석에 왔는데 송 위원님이 '우리가 지금 귤밭에 들어온 것 같지 않습니까, 오렌지 따러 들어온 사람 같아요'라고 하시더라. 그걸 받아야 하는 내 입장에선 숙제였는데 지금은 우리가 주고 받은 어록들이 온라인에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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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수는 "송 위원님인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시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셔서 해외 출장 가면 사모님 화장품이라든가 선물을 꼭 준비하셨던 기억이 난다. 프로 중의 프로셨다"며 "송 위원님이 2019년 K리그 중계 복귀하셨을 때 '방송을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하셨는데 내가 여건이 그렇지 않았다. 이후에도 간간히 연락했다. 송 위원님 마지막 은퇴 중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가시니 황망할 따름"이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 tvN / 중계화면 캡처 / 한국프로축구연맹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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