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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피는 못 속인다”…우승컵 들어 올린 한·일 반상 스타 형제-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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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우에노 리사 3단, ‘센코컵 2025’ 깜짝 우승
우에노 아사미 6단과 첫 세계 기전 자매 제패
韓 김채영 9단-김다영 5단, 주요 기전서 우승
韓 이세돌 9단-이상훈 9단, 형제 우승 반열에
바둑팬들에겐 또 다른 볼거리 제공
‘산아제한’ 정책 도입한 中, 유사 사례 드물어
[반상톡톡(9)]

일본의 우에노 리사(왼쪽) 3단이 16일 ‘센코컵 월드바둑여자최강전 2025’ 결승전에서 한국의 최정 9단과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우에노 3단은 이 대국에서 당초 예상을 뒤엎고 세계 여자 프로 바둑 랭킹 1위인 최 9단에게 막판 극적인 대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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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발견했네요.”

기대 이상이란 얘기였다. 대국 종료 직전, 패색이 짙었던 시점에 구사된 맥점으로 대반전을 불러온 데 따른 평가다. 지난 16일 일본 신예인 우에노 리사(19) 3단이 ‘센코컵 월드바둑여자최강전 2025’ 결승전에서 세계 여자 바둑 랭킹 1위인 한국 최정(29) 9단을 돌려 세운 가운데 나온 바둑TV 해설 위원의 호평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대마 사냥이 좌절되면 완패를 당하는 게 통상적인데, 우에노 3단의 이번 ‘센코컵’ 결승전 대국에선 이런 흐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라며 “주도권을 내준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노림수를 갖고 보여준 우에노 3단의 집중력은 대단했다”라고 극찬했다. 우에노 3단은 ‘센코컵’ 결승전에서 대국 중반 좌중앙 대마 사냥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승부도 끝난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우에노 리사 3단은 대국 종반 무렵, 우변 1선으로 파고든 끝내기 묘수에 힘입어 2022~23년 센코컵 타이틀 보유자였던 최 9단에게 극적인 반집 역전승으로 우승컵을 움켜쥐었다.

우에노 3단이 세계 여자 바둑계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10대에 생애 첫 진출한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막판 무서운 승부근성으로 한 수 위였던 최 9단을 꺾고 타이틀 획득에 성공하면서다. 센코컵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최 9단의 대회 3년 연속 우승 여부가 관심사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금세 우에노 3단에게 향했다. 2023~24년 2년 연속 일본 여류 기성 타이틀을 따낸 우에노 3단의 경쟁력이 국제 무대에서도 통했다는 분석까지 덧붙여지면서다.

16일 ‘센코컵 월드바둑여자최강전 2025’에서 우승한 우에노 리사(왼쪽 사진 오른쪽) 3단과 지난해 12월 ‘제7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오픈전’ 타이틀을 거머쥔 우에노 아사미(오른쪽 사진) 6단은 바둑 역사상 첫 국제 기전 제패 자매로 기록됐다. 일본기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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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해 세계 여자 바둑계를 강타했던 우에노 아사미(24) 6단이 우에노 리사 3단의 친언니였다는 사실에 세간의 관심은 더해졌다. 이미 국제 기전 우승을 경험한 우에노 아사미 6단과 더불어 바둑계 역사상 첫 세계 대회 제패 자매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에서다. 2022년 4월에 열린 ‘제4회 센코컵’에서 우승해 일본 여성 프로기사로선 처음으로 국제 기전 선수권자가 된 우에노 아사미 6단은 지난해 12월엔 ‘제7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오픈전’ 타이틀까지 낚아챘다. 우에노 아사미 6단의 ‘오청원배’ 우승은 일본 기원 창립 100주년을 맞아 달성한 기록이어서 의미도 배가됐다. 바둑TV 해설 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프로 바둑기사는 “자매인 우에노 아사미 6단과 우에노 리사 3단의 잇따른 세계 기전 우승 소식은 일본 바둑계 입장에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라며 “그동안 변방으로 내몰렸던 일본 여자 바둑이 급부상하면서 세계 여자 바둑계 판도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봤다.

2017년 ‘제1회 한국제지배 여자기성전’에서 우승한 김다영(왼쪽) 5단이 친언니인 김채영 9단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채영 9단은 2018년 국제 기전인 ‘제1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오픈전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초대 기전 챔프 기록을 보유한 김채영 9단과 김다영 5단의 부친은 김성래(62) 프로 6단으로, 국내 최초 3부녀 프로 바둑기사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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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반상(盤上) 우승 자매의 활약이 눈에 띈다. 김채영(29) 9단과 김다영(27) 5단이 대표적이다. 세계 기전 우승 소식은 언니인 김채영 9단이 먼저 알렸다. 지난 2014년 ‘제19기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을 가져간 김채영 9단은 4년 뒤인 2018년엔 ‘제1회 오청원배’에서 챔프로 등극, 마침내 국제 기전 선수권자 명단에 입력됐다. 김채영 9단은 지난해엔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마스터스’와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에서도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동생인 김다영 5단은 아직까진 세계 기전 타이틀은 없지만 2017년 국내 대회인 ‘제1회 한국제지배 여자기성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바 있다. 초대 기전 챔프 기록을 보유한 김채영 9단과 김다영 5단의 부친은 김성래(62) 프로 6단으로, 국내 최초 3부녀 프로 바둑기사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여자 프로 바둑기사 랭킹(3월 기준)에선 김채영 9단이 4위, 김다영 9단이 11위에 각각 랭크됐다.

한국 바둑의 간판스타였던 이세돌(42·은퇴) 9단과 이상훈(50) 9단 또한 우승컵을 소유한 형제 프로 바둑기사다. 반상 권력의 바로미터인 세계 메이저 트로피를 14개 보유, 이 부문에서 바둑계 살아 있는 전설인 이창호(50·17개) 9단에 이어 역대 2위인 이세돌 9단은 K바둑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9년 전,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1승 4패로 패했지만 이때 거둔 이세돌 9단의 1승은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인간계의 유일한 승리였다.

한국 바둑의 간판스타였던 이세돌(오른쪽) 9단과 친형인 이상훈 9단이 2000년 ‘SK가스배 신예 프로 10걸전’에서 대국을 벌이고 있다. 이 대국에선 이상훈 9단이 이세돌 9단을 꺾고 우승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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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의 친형인 이상훈 9단 역시 신예기전이긴 하지만 지난 2000년 ‘BC카드배 신인왕전’과 ‘SK가스배 신예 프로 10걸전’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프로 바둑 사상 최초의 형제 결승 대국으로 벌어졌던 10걸전에선 동생인 이세돌 9단에게 승리,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이후 국내 최대 프로 기전인 ‘KB바둑리그’에서 감독으로 활약했던 이상훈 9단은 일찌감치 세계 초일류 기사 반열에 진입한 이세돌 9단의 매니저 역할도 맡았다.

바둑계 관계자는 “수많은 프로 바둑기사들도 단 1개의 기전을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사례가 허다한데, 형제자매가 우승을 한다는 건 예삿일은 아니다”라며 “바둑팬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바둑층이 두꺼운 중국에서 형제자매 우승 기사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흥미롭다”라며 “중국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시행했던 ‘계획생육(산아제한)’ 인구 정책 영향으로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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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경 선임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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