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지원. ABM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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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지원은 1998년 MBC 시트콤 '아니 벌써'로 데뷔한 후 27년간 한시도 쉬지 않고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누볐다. 그 사이 이름 석 자를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드라마 '조작', '작은 아씨들', '싸인' 등 굵직한 히트작도 품에 안았다.
올해 행보는 더욱 눈에 띈다. 3월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 나민옥 역으로 특별출연해 적은 분량에도 '도희정 장학금'이란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5월 넷플릭스 사극 '탄금'에서는 상단 안주인 민연의 역을 맡아 잃어버린 아들을 향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을 선보였다.
지난 3일 종영한 KBS 2TV 주말극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로는 정점을 찍었다. 2월부터 꼬박 6개월을 방송한 드라마에서 배포 큰 여장부 마광숙 역을 맡아 폭넓은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남편을 잃은 후에도 시동생 네 명과 함께 '독수리술도가'를 운영하면서 대가족의 넘치는 정을 그린 데 이어 호텔 그룹 회장 안재욱(한동석)과 재혼에 골인하며 러브라인까지 책임졌다.
엄지원의 활약 덕분에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는 20%대(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상반기에만 세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킨 그는 최근 서울 강남구 ABM컴퍼니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렇다 해도 들뜨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오래 활동했지만 아직은 내 '화양연화'를 맞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 순간을 위해 계속 연기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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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부터 시작해서 폭염일 때 끝났다.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1년을 함께 했다. 많은 분의 사랑을 받으며 끝나서 행복하다. 우리는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하지만, 어쨌든 시청률이나 흥행 같은 건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나. 흥행이 되면 선물처럼 여기고, 아니어도 상처받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게 돼 그저 감사할 뿐이다.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가 잘 된 것은 밥집에 갔을 때 많이 실감한다. 식당에 가면 많은 분이 '잘 보고 있다'며 인사해주셨다.”
-마광숙 캐릭터가 오지랖이 넓다. 시동생들을 전부 책임지고, 나중에는 재혼 상대인 안재욱의 사별한 아내 어머니(전 장모)인 박정수를 모시고 살기까지 하지 않나. 그런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맞다. 광숙이가 엄청난 오지랖을 가진 캐릭터다. 모든 사람을 다 끌어안고 이해하는 캐릭터다. 광숙이와의 싱크로율은 지금까지 연기한 모든 캐릭터 중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광숙이의 씩씩함, 깊은 정, 남다른 의리 등이 나와 닮았다. 광숙이는 워낙 대가족을 좋아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것 같다. 사람을 한순간에 깊게 좋아하는 부분 등은 나와 달라서 기가 뺏기는 순간도 있었다. 안재욱의 장모까지 모시고 사는 걸 보면서는 '이걸 할 수 있다고?' 깜짝 놀라기는 했다. 실제라면 나는 '슬프지만 종종 연락하고 지내요'라며 인사를 하고 헤어지지 않을까? 하하!”
-마광숙과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요즘 핵가족화되고 개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광숙이 더욱 다르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제가 KBS 주말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을 참 좋아했는데, 저처럼 과거 감성을 그리워 하던 사람들이 광숙이의 오지랖에 만족한 것 같다. 저 또한 대본이 처음부터 재미있었다. 남편이 사망하고, 우여곡절 끝에 재혼을 하는 등 일부 설정들이 극적이어서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자칫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야기가 사랑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유하게 잘 풀릴 거란 믿음이 컸다. 처음 받은 그 이미지를 토대로 광숙이의 수많은 오지랖을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첫 촬영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10개월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심지어 4부가 연장되면서 50부작이 54부작으로 마무리가 됐는데 어땠나.
“물론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전달하려고 했다. 이미 긴 작품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들어와서 컨디션 관리에 집중했다. 끝까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잘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연장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잘 되어서 연장된 거니까 감사한 마음이 컸다. 다만, 체력도 체력인데 이야기의 밀도가 달라질까 봐 걱정했다. 많은 시청자들의 요청이 반영된 결과이니 무조건 잘 끝맺어내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했다. 그렇게 집중하느라 이 작품을 하면서는 아무도 못 만났다. 같은 에너지를 유지해야 하니 쉬는 날에는 무조건 쉬어야 했다.”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가 어떤 이유로 20%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요즘엔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지 않았나.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친인척이 가깝게 지냈는데 지금은 부모, 형제도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아무리 무던하게 살아도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은 분명히 모두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울타리 같은 존재, 그늘 같은 존재를 그리워할 거니까.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자식을 가지고,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 가진 감정의 큰 카테고리라 생각한다. 그런 감정이 약해진 시대에 광숙이 만든,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대안 가족'의 형태가 시청자들에 따뜻하고 예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그 부분이 경기도 안 좋고 팍팍한 이 시대에 힐링이 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복작복작하게 그리는 드라마들이 많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가족극다운 KBS 주말극이 나와서 많은 어른들도 좋아해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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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박 씨와는 부부였다가 여기에서 시동생과 형수로 만났다. 초반에 술도가에서 윤박 씨가 딸 하니를 데리고 오는 장면을 찍으면서는 어쩐지 윤박 씨와 내 사이에 아기가 있는 그림이 너무 익숙했다. 윤박 씨도 제게 '산후조리원' 당시 호칭이었던 '딱풀이 엄마!'라고 부르더라.(웃음) 우리가 부부로 있어야 할 거 같고. 영 어색하고 민망해서 박이 씨만 보면 자꾸 웃음이 터져서 혼났다. 윤박 씨가 시동생으로 다가오기까지 적응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안 그래도 형제들과 빨리 친해져서 케미스트리를 붙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친한 사람이 한 명 껴 있어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형제들과 서로 개성, 나이가 다 다른데도 덕분에 빠르게 친해졌다. 드라마를 촬영하며 우리끼리 엄청 끈끈해졌다. 막내 오강수 역의 이석기 씨 빼고는 형제들과 나 모두 엄청 수다스러웠다. 그래서 말이 끊길 틈이 없었다.”
-서로 사별의 아픔을 나누고 결국 재혼에 골인하는 한동석 역의 안재욱과는 호흡이 어땠나.
“중후반부터는 우리의 로맨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어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많은 힘이 되었다. 선배님이 연기를 정말 잘하신다. 그래서 배운 것도 많다. '저 연기는 저렇게 하네?', '이 대사를 이렇게 살리네?'하며 배우들만 느끼는 뜻밖의 부분들을 보며 다르다 싶었다. 덕분에 연기하며 재미있었고, 한동석과 마광숙 커플이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극 중 마광숙과 한동석이 뜻밖에도 임신에 성공해 가족을 이루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런 결말을 예상했나.
“처음에 제안받을 당시만 해도 열린 결말이었다. 위기를 맞아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50부작이 워낙 길다 보니 내용이 조금씩 유기적이 된다. 그래서 배우들끼리는 '결혼으로 끝날까?'하며 궁금해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쌍둥이 임신으로 결론을 내셨더라. 항상 대본이 나오면 안재욱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임신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고는 '쌍둥이네?'하며 엄청 재미있어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극 중 아이유(오애순)의 새 어머니 나민옥 역으로 등장해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았는데 어땠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여섯 편의 대본을 받았다. 정말 너무너무 좋더라.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했다. 1부와 6부를 보면서는 펑펑 울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이면 작게 나오더라도 좋은 작품의 한 부분이 되는 것도 행복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특별출연을 바로 결정했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컸다. '미생', '나의 아저씨' 등을 보면 감독님 작품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다 살아있지 않나. 김 감독님이 하시니까 좀 더 믿음이 갔던 것도 같다. 물론 그 작품에서 가장 탐난 캐릭터는 염혜란 씨가 맡은 오애순 엄마 전광례 역이다. 아직도 그 캐릭터는 정말 하고 싶다. '도희정 장학금'이란 유행어가 생긴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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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작품 공개 시기가 우연히 다 몰렸다. 분명 좋은 일이지만 들뜨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훈련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이다. 잘되면 행복하지만, 안되면 많이 아프니까. 그래서 잘되었을 때 들뜨지 않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받아들이려 아주 오랜 기간 마음 수양을 해왔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원래 제가 작품 해오던 템포라 받아들인 덕분인지 마음 상태는 비슷하다.”
-들뜨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왜 먹게 된 이유가 있나.
“오래 활동을 하면서 마음 건강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감정을 표현하는 업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기질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힘든 때도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그 감정에서 나와야 좋은 순간도 만나는 거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게 어려우면 직업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결과가 좋게 나올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마음을 수양하게 된 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활동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없다. 그 순간을 언젠가 만나기를 꿈꾸고 있다. 그런 꿈을 아직도 꾸고 있기 때문에 계속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그런 화양연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고, 우주의 기운이 만날 때 '지금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것 같다. 연기적으로 만족한 작품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내 연기에 '와, 지금 괜찮았어' 싶은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 아직은 항상 '최선을 다 했어'의 느낌이다.”
-6개월 방송을 함께 달려온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시청자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해달라.
“가장 크게 감사한 게 시청자 분들이다. 시청자 덕분에 어쩌면 지칠 수도 있었을 순간을 이겨내고 이 작품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광숙이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꼭 한 줄 써 주셨으면 좋겠다.”
유지혜 엔터뉴스팀 기자 yu.jihye1@jtbc.co.kr
사진=ABM컴퍼니 제공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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