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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칼날 제구…사무라이 투수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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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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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에 일본인 투수가 대거 몰려온다. KBO리그는 내년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각 구단이 포지션 제한 없이 아시아리그 소속 아시아 국적 선수를 한 명씩 영입할 수 있는 제도다. 기존 외국인 선수 3명과 별개로 뽑을 수 있고, 1군 엔트리는 28인(26인 출장)에서 29인(27인 출장)으로 한 자리 늘어난다. 제도 도입 목적은 ‘아시아 야구 교류 확대’와 ‘리그 경쟁력 강화’다.

    KIA 타이거즈를 제외한 9개 구단이 빠르게 선수 영입을 마쳤다. 대세는 ‘일본인 투수’다. 모두 투수를 뽑았고, 그중 7명이 일본 국적이다. 호주 국적의 라클란 웰스(LG 트윈스), 대만 국적의 왕옌청(한화 이글스)만이 예외다. 다만 왕옌청도 올해 일본프로야구(NPB) 2군에서 뛰었으니 일본 리그에서 온 투수 8명이 내년 한국 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주전 유격수 박찬호를 두산으로 보낸 KIA만 호주 국적 내야수를 선발할 계획이다.

    특급 선수들은 아니다. 아시아 쿼터는 계약금·연봉·옵션·이적료를 모두 포함한 영입 비용 총액이 최대 20만 달러(약 2억9600만원)로 제한된다. 일반 외국인 선수 신규 연봉 총액 상한선인 100만 달러(약 14억9000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일본 야구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인프라를 자랑한다.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년간 뛰었던 정민철 해설위원은 “일본은 선수층이 두터워 2군에도 수준급 투수가 즐비하다. 사회인 야구에도 제구나 변화구 완성도가 높은 투수가 많다. 기존 국내 투수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A 단장도 “제도 도입을 결정했을 때는 호주 선수들이 주를 이룰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선수를 찾다 보니, ‘세미 프로’ 호주나 ‘한 수 아래 리그’ 대만보다, ‘기본’은 보장되는 일본 쪽 투수가 안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전했다.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게 된 다케다 쇼타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에서 통산 66승을 올린 투수다. 2015년 프리미어12와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지난 4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한 시즌을 쉰 뒤 재기를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는 최근 “일본 야구를 떠난 선수들의 한국 야구 도전이 눈길을 끈다”며 “다케다는 올해 추정 연봉이 1억5000만 엔(약 14억2200만원)인데, 재계약이 어렵자 연봉을 대폭 낮춰 한국으로 갔다”고 했다.

    다무라 이치로(두산 베어스)는 올해 NPB 1군에서 27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했고, 쿄야마 마사야(롯데 자이언츠)와 토다 나쓰키(NC 다이노스)도 짧게나마 1군 마운드를 밟았다. 토다와 왕옌청은 2군에서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외 다른 선수들은 2군과 독립리그 출신이지만, 체격 조건이 훨씬 좋은 호주 선수들을 제치고 한국에 왔다.

    국내 선수들은 괴롭다. 한 시즌 선발 로테이션은 투수 5명인데 그중 두 자리는 외국인 몫이다. 여기에 아시아 쿼터 선수가 선발 한 자리를 꿰찬다면 남은 자리는 두 개뿐이다. 국내 선발 투수 육성은 더 어려워진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인 양현종(KIA)은 “선수들은 ‘일자리 문제’ 차원에서 아시아 쿼터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이미 결정된 부분이라 거부할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선수 권익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구단 입장에선 아시아 쿼터는 매우 효율이 높다. 100만 달러를 들인 외국인 선수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데, 20만 달러에 영입한 아시아 선수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면 ‘대박’이다. A 단장은 “각 구단에 투수가 너무 부족하고, 그 탓에 FA 몸값도 과도하게 높아졌다. 국내 선수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 쿼터를 먼저 적용하기 시작한 프로농구의 경우 필리핀 선수들와의 경쟁으로 오히려 국내 젊은 선수들이 자극을 받아 기량이 좋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팬들 입장에서는 경기력과 다양성이 높아진 경기를 즐길 수 있다. 한국 야구가 너무나 폐쇄적이어서 경쟁력이 떨어졌으며 일본처럼 문호를 더 개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민철 위원은 “팬들을 위해 경기 질을 높이고 한국 야구의 문을 더 활짝 열겠다는 취지다. 일단 내년 시행 후 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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