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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정현, 동점 때도 과감한 플레이 “난 조코비치보다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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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오픈서 남자 단식 첫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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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오른쪽)과 노박 조코비치가 3시간21분간의 혈전을 마친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세트스코어 3-0으로 완승한 정현은 ’어릴 때부터 우상이었던 조코비치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이 배웠고 그 덕분에 오늘 구석구석 찔러넣는 공격을 할 수 있었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멜버른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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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나?’

한국 남녀 테니스를 합쳐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8강에 오른 정현(22·한국체대·세계 58위)은 승리 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중계카메라 렌즈 위에 한국어로 이렇게 썼다. 선수들은 대개 사인을 하는데, 재치 넘치는 정현은 중계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보고 있나?' 앞에는 '캡틴'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주니어 시절부터 2015년까지 자신을 이끌어 준 삼성증권 테니스팀 김일순 감독을 비롯해 코칭 스태프를 향해 쓴 글이다.

정현이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메이저 대회 12회 우승자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14위)를 3시간21분간의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3-0(7-6, 7-5, 7-6)으로 꺾었다. 이로써 정현은 한국 테니스 메이저 대회 도전사에 새로운 문을 열었다. 종전 최고기록은 이형택(42·은퇴)이 2000, 2007년 US오픈에서 기록한 16강. 이를 넘어 8강에 오른 정현은 상금 44만 호주달러(약 3억7600만원)를 확보했다. 랭킹 포인트도 360점을 얻어 적어도 40위대 진입은 확정했다.

3시간21분 접전 끝 3-0 완승

정현은 2년 전인 2016년 이 대회 1회전에서 조코비치에게 0-3으로 완패했다. 당시 조코비치는 세계 1위였고 정현은 1회전에서 밥 먹듯 탈락하는 초보 선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는 완전히 달랐다. ‘우상’ 조코비치와 첫 대결이 너무 떨려 아침 밥도 못 먹었던 수줍은 소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먼저 로드 레이버 아레나(센터 코트)에 들어선 정현은 1만5000여 관중이 “조코비치”를 연호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직한 샷을 날렸다.

정현은 초반부터 조코비치를 몰아붙였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반년간 코트에 서지 못했던 조코비치는 서브와 포핸드·백핸드 샷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다. 더블폴트(서브 연속 2번 실패)를 9개나 쏟아냈다. 또 서브 속도는 평균 시속 184㎞에 그쳤다. 정현은 그보다 느린 평균 시속 179㎞의 서브를 넣었지만 더블폴트는 2개뿐이었고 구석구석을 찔렀다.

1세트, 정현이 타이브레이크(게임스코어 6-6에서 7점을 먼저 따는 쪽이 승리) 끝에 7-6으로 세트를 가져가자 조코비치가 흔들렸다. 메디컬 타임(부상 치료 휴식)을 불러 팔꿈치 마사지까지 받았다. 그러나 정현은 조코비치를 좌우로 흔들어 힘을 빠지게 했고 2, 3세트 역시 7-5, 7-6 등 체력전으로 끌고 가면서 완승했다. 정현이 3세트 매치포인트를 따고 주먹을 불끈 쥐자 조코비치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했다.

정현은 경기 후 재치 있는 인터뷰로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꿈이 이뤄졌다. 나도 8강에 오른 게 믿기지 않는다. 그저 조코비치와 다시 대결하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릴 때부터 나의 우상이었던 조코비치를 보고 많이 따라 했더니 여기까지 왔다. 3세트를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조코비치보다 더 젊기 때문에 남은 세트에서 체력적으로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고 웃었다. 이어 진행자가 한국어 인터뷰를 부탁하자, 정현은 관중석에 양해를 구한 후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팬들께 감사한다. 그런데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다. (8강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테니 많은 응원 부탁한다”고 말했다.

현장 팬들 “차세대 스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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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테니스 전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한 뒤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는 정현. [멜버른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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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정현은 세계 테니스 팬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았다. 외신들도 정현의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 사생활이나 한국 문화에까지 관심을 보였다. 취재진은 “여자친구가 있나” “투어 대회 때 한국 음식을 먹나” “한국에선 성과 이름 중 무엇을 앞에 쓰나”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호주오픈 조직위원회도 정현 돌풍에 대한 한국 내 반응에 호기심을 보이며 한국 신문의 정현 기사를 스크랩하고 있다.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진수 코리아오픈 토너먼트 디렉터는 “정현이 여유가 넘쳤다. 조코비치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만의 테니스를 완벽하게 해냈다. 특히 스트로크 랠리에서 기회가 올 때마다 먼저 공격한 것이 적중했다”며 “정현이 승리 후 관중석의 부모님을 향해 큰절을 올려 관중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현장에서 관람한 테니스 팬들이 ‘차세대 테니스 스타가 탄생했다’고 칭찬했다”고 전했다.

경기장에는 아버지 정석진(52) 전 삼일공고 테니스 감독과 어머니 김영미(49)씨, 그리고 실업 테니스 선수인 형 정홍(25)씨 등 가족이 총출동했다. 다음달 군 입대를 앞둔 정홍씨는 이번 대회 틈틈이 정현의 연습 파트너로 힘이 보탰다.

이달 초 꺾은 샌드그렌과 내일 8강

정현은 아직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을 것 같다”는 외국 취재진 질문에 거듭해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정현은 “한국에선 테니스가 비인기 종목이다. 지난해 11월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한 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긴 했지만 그건 오직 테니스 코트에 있을 때뿐이다. 길거리에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현이 호주오픈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이날 정현과 조코비치의 16강전 인터넷 중계는 누적 재생 건수가 400만 건(네이버 기준)에 육박했다. 또 동시접속 건수는 30만 건을 훌쩍 넘겼다. 프로야구 정규 시즌 중 인기팀 간 경기의 경우 15만 건가량 기록한다.

정현은 8강전에서 자신과 함께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또 다른 주인공인 테니스 샌드그렌(27·미국·97위)을 만난다. 샌드그렌은 16강전에서 도미니크 팀(25·오스트리아·5위)을 3-2(6-2, 4-6, 7-6, 6-7, 6-3)로 물리쳤다. 정현은 이달 초 호주오픈 전초전이던 오클랜드 오픈 32강전에서 샌드그렌을 만나 2-1(6-3, 5-7, 6-3)로 이겼다. 샌드그렌은 아직 우승이 없으며 최고 랭킹은 지난해 11월 기록한 85위다.

정현과 샌드그렌 중 승자는 준결승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2위)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24일 열릴 정현과 샌드그렌의 8강전은 JTBC3 FOX Sports가 생중계한다.

박소영 기자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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