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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집에서 자면서 투석하라" 대만선 총통까지 권하는 이유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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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환자가 집에서 자면서 복막투석을 하는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했다(사진 속 인물은 모델임). 배꼽 근처 구멍으로 관을 연결하고 거기로 투석액을 주입해 노폐물을 걸러낸다.(사진 속 인물은 모델임) 사진제공 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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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고, 일상 생활에 별 지장을 받지 않아서 좋아요."

    서울 금천구에 사는 작가 우기정(53·가명)씨는 중증 만성콩팥병(신장병) 환자이다. 지난 3일 기자와 통화에서 재택 투석치료의 좋은 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집에서 스스로 복막투석을 한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의료진에게서 치료법을 배웠고, 이제는 익숙해졌다. 하루 30분씩 6시간마다 한다. 투석액을 몸에 주입하면 노폐물이 흡수돼 몸밖으로 나온다. 기계로 하면 잘 때 8시간가량 꽂아두면 되는데, 우씨는 수동 방식으로 한다. 주치의는 보라매병원 이정표 신장내과 교수이다. 한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간다.



    일상생활 유지하며 가정치료



    콩팥은 노폐물을 걸러주는 정수기이다. 우씨는 당뇨병·고혈압 때문에 콩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투석이라는 치료를 통해 노폐물을 걸러낸다. 병원에 가서 혈액투석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우씨는 재택 복막투석(PD)을 선택했다.



    한국,재택 복막투석에 752억

    대만,총통이 앞장서서 강조

    태국·홍콩 재택투석 우선 적용

    대만환자 "음식 스트레스 해방"

    병원 투석은 주 3회(하루 4시간) 한다. 오가는 시간 포함하면 5~6시간 걸린다. 경제 활동을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은 데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우씨는 재택투석을 하면서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초기 치매인 어머니를 보살피고 병원에 모시고 다닌다. 노부모의 식사도 챙길 수 있다.

    5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3회 아시아·태평양 신장학회에서 우 훙라이(39)를 만났다. 약 18년 재택투석을 한 만성콩팥병 환자이다. 대만투석신장환우협회 회장을 맡아 재택투석을 국내외에 알린다. 그의 어머니도 12년 재택투석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재택투석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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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훙라이 대만신장투석환우협회 회장이 지난 5일 타에베이에서 열린 아태신장학회에서 한국 기자단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 회장은 2007년부터 재택 투석치료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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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가서 4시간~4시간 30분 혈액투석 하려면 그 전부터 음식을 제한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아요. 재택투석은 잠잘 때 하면 돼 낮에 일합니다. 식단을 관리하지 않아도 돼요. 훨씬 편하고 유연합니다."

    초고령 사회(Super ageing society) 문제는 선진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아시아에도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신장학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초고령=의료비'로 통할 정도로 후세대에 큰 부담을 안긴다. 안락하게 늙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둘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답이 '사는 곳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이다. 쉽게 말하면 '병원에서 집으로'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여러 종류의 재택의료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2019년 시행한 재택 복막투석 시범사업에 752억원을 투입해 3년 더 시행한다. 돋보이는 결정이다. 그동안 8881명이 21만 건 진료 서비스를 받았다.

    또 1차 의료 방문진료(왕진·535억원)에다 1형 당뇨병(35억원), 가정형 인공호흡기(4억여원), 심장질환(39억원) 등의 재택의료 시범사업도 이어간다. 재택 복막투석은 병원에서 하는 혈액투석보다 진료비가 환자당 연 1000만원 적게 든다. 이동형 대한신장학회 홍보이사 대행은 "복막투석의 치료 성적이 혈액투석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라이칭더 "재택투석은 사람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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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5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신장학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그는 "재택투석이 사람 중심적이고 건강한 노화를 촉진하며 의료비를 절감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라이칭더는 신장내과 전문의다. 타이베이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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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아·태 신장학회 개회식에 놀랍게도 대만 라이칭더 총통이 참석해 재택투석 정책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신장내과 전문의이다. 라이칭더 총리는 축사에서 "재택투석은 '병원 전용(병원 가야만 진료받는다는 걸 의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의료가 가족과 지역사회에 침투하도록 하고, 인도적 돌봄, 건강한 노화, 지속 가능한 의료라는 세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택투석 비율(현재 7.9%)을 2035년 18%로 올리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투석 환자의 4.5%만 재택투석을 하고 있다.

    대만은 만성콩팥병 발생률·유병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는데, 이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라이칭더 총통은 "고혈압·고혈당·고지질이 신장병을 비롯한 주요 질병의 위험 인자"라며 "우리는 지난해 3고(高) 예방 및 관리 888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투석 발생률과 의료비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



    정은경 "환자 중심 치료 강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대만 신장학회 정책포럼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만성콩팥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 환자 중심의 치료 강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복막투석 재택관리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신장투석 환자는 2020년 9만 4540명에서 지난해 11만 1827명으로 늘었다.

    아시아 국가 학자와 보건 관계자도 재택 복막투석 정책을 소개했다. 태국·말레이시아·홍콩은 일찍이 재택 복막투석 우선 정책(PD first)을 시행했다. 홍콩은 1985년부터 시행했고, 투석 환자의 73.6%(2021년)가 PD를 한다. 태국은 17%, 말레이시아는 12%에 달한다. 재택의료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효하다. 대만국립대학병원 복막투석센터 황 젠쿠웬 내과부신장과주임 의사는 "재택의료를 경제 활동하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대만에는 여름에 태풍이 많이 오는데, 이럴 때 편하게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표 보라매병원 교수는 "한국에서 복막투석 비율이 줄고 있고 이를 아는 환자가 적다. 심지어 복막투석 치료를 할 줄 아는 의사도 줄고 있다"며 "정부가 시범사업을 3년 연장한 것이 환자 중심의 복막투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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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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