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테니스 메이저 8강
세계 랭킹 58위 정현은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전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31·세계 14위)를 3시간 21분 만에 3-0(7-6, 7-5, 7-6)으로 누르는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켰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5000명의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맞붙은 정현(오른쪽)과 노바크 조코비치가 경기가 끝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라코스테 제공> |
이로써 정현은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그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메이저 대회 8강 무대를 밟게 됐다. 정현에 앞서 1981년 US오픈 이덕희(여자단식), 2000년과 2007년 US오픈에서 이형택이 16강까지 올랐을 뿐이다.
정현은 2016년 이 대회에서 당시 세계 1위 조코비치를 1회전에서 만나 1시간 55분 만에 0-3(3-6, 2-6, 4-6)으로 당한 완패를 후련하게 설욕했다. 무결점 그라운드 스트로크를 앞세운 정현의 끈질긴 수비 앞에 호주오픈 6회 정상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 12회 우승에 빛나는 조코비치는 실수를 쏟아냈다.
노바크 조코비치와의 호주오픈 16강전 도중 환호하고 있는 정현. <라코스테 제공> |
8강 진출로 약 3억7000만 원의 상금을 확보한 정현은 24일 세계 97위 테니스 샌드그런(미국)과 맞붙게 돼 4강에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만날 수 있다.
완벽한 ‘언더도그(Underdog·약자)의 반란’이었다. 2년 전 경기 도중 정현의 굿샷에 박수까지 보냈던 조코비치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브 난조에 허덕인 조코비치는 경기 내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자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쓰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낸 정현은 좌우 코너를 파고드는 예리한 스트로크로 2세트마저 따낸 뒤 3세트 만에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이드라인을 파고드는 패싱샷이 일품이었다.
정현이 10개의 패싱샷을 치는 동안 조코비치는 단 3개에 그쳤다.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6개월을 쉰 조코비치는 이날도 통증을 호소하며 더블폴트 9개를 기록했다. 경기 후 조코비치는 “정현은 오늘 톱10 선수의 플레이를 펼쳤다. 위기나 승부처에서 믿을 수 없는 샷을 구사했다. 얼마나 더 발전할지 모르겠다”고 극찬했다. 조코비치는 “코트에서 그는 마치 벽과도 같았다. 2년 전과 비교해 육체적으로 성장했지만 큰 경기들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것을 느꼈다. 오늘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형과 아버지를 따라나선 테니스 코트가 놀이터였던 정현은 6세 때 심한 약시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 라켓을 잡았다. 그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코트에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남자 복식 금메달을 땄다. 약점인 서브와 포핸드 문제로 슬럼프에 빠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까지 포기했던 그는 지난해 재기에 시동을 건 뒤 연말 세계 테니스 유망주들이 출전한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넥스트 젠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이번 시즌 기대감을 높였다.
김종석 kjs0123@donga.com·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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