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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광화문에서/황형준]초유의 전직 수장 고발로 갈등만 키운 감사원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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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황형준 정치부 차장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행위이고 감사원으로서 하면 안 되는 행위였다.”

    김인회 전 감사위원은 3일 감사원장 권한대행 자격으로 ‘운영쇄신 태스크포스(TF)’ 활동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치감사와 무리한 감사로 인해 많은 분에게 고통을 드린 사실이 밝혀졌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진행된 권익위 감사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등에서 전산 조작 및 군사기밀 누설 등 불법, 부당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

    이번 TF는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감사 등 전 정권 감사를 주도해 여권의 미운털이 박힌 유병호 감사위원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자 유 감사위원과 김영신 감사위원 등은 해명 자료를 내 “운영쇄신 TF가 적법 절차와 인권 보장을 도외시하고, 온갖 표적조사를 했다”고 반발했다.

    의아한 것은 김 전 감사위원의 유체이탈식 사과였다. 감사위원회의는 감사원장을 포함한 7명의 감사위원이 과반수 찬성으로 회계검사와 직무감찰 등 주요 사항을 의결로 정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동안 헌법기관인 감사위원이 문제 제기 한번 제대로 안 하고 눈치 보며 자리를 지키다 정권이 바뀌자 다른 감사위원을 향해 “부끄럽다”고 비난하는 꼴이다. 김 전 감사위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수석사무차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그는 4년간 임기를 마치고 5일 퇴임했다.

    TF 측과 유 감사위원 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다 보니 감사원 안팎에서는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감사원이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유 감사위원 등을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한 만큼 결국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질 전망이다.

    감사원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권이 바뀐 뒤 자체 TF를 통해 과거 감사 결과를 감사하고 전직 원장까지 고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내부 갈등도 극심해졌다. 지난 정부에서 요직에 있던 이들은 ‘타이거파’로 불리는 유 감사위원 라인으로 지목돼 불이익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파견을 갔던 한 과장급 직원은 유 감사위원과 별 인연이 없는데도 타이거파로 지목돼 원대 복귀한 일도 있었다. 이를 본 감사원 직원들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자조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감사원의 상징은 조선시대에 비밀리에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응징했던 암행어사가 들고 다니던 마패다. 암행어사가 임금이 바뀐다고 해서 탐관오리를 청백리로, 청백리를 탐관오리로 만들었다면 민초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김호철 전 민변 회장을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하자 야당은 “코드 인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친여권 성향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김 후보자는 취임 후 정권의 외풍을 막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감사가 이뤄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 지원 기관’이라는 오명만 짙어지고 감사원의 신뢰 회복은 요원해질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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