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확히는 잉글랜드가 요즘 난리다. "It's coming home(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이란 가사를 반복해 부르는 잉글랜드 사람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그득하다.
무엇이 집으로 오고 있는 걸까. 노래의 원래 제목은 'Three Lions(삼사자·잉글랜드의 문장)'로, 부제가 'Football's coming home(축구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이다. '유로(유럽축구선수권) 96' 당시 '라이트닝 시즈'란 밴드가 '축구 종가'인 잉글랜드에서 대회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만들어 불렀다.
이 노래는 이후 자연스럽게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응원가로 자리 잡았다. 작년 러시아월드컵 때 잉글랜드가 28년 만에 4강에 오르자 팬들은 시도 때도 없이 "It's coming home~"을 열창했다. 축구의 고향인 잉글랜드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가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쉽게도 잉글랜드는 4위에 그쳤다.
1년이 흘러 올여름 영국 곳곳에서 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번엔 승리의 찬가다.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개최한 2019 크리켓 월드컵에서 홈 팀 잉글랜드가 사상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크리켓 월드컵은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럭비 월드컵과 함께 '3대 월드컵'으로 통하는 빅 이벤트다. 인도가 우승한 2011년 대회엔 전 세계 누적 시청자 수가 22억명에 달했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공동 개최한 2015년 월드컵 땐 110만장의 티켓이 팔렸다.
세계 최고 크리켓 팀을 가리는 이 무대에서 종주국 잉글랜드는 번번이 체면을 구겼다. 우승 한 번 없이 준우승만 세 번 했는데 마지막 결승 진출이 1992년이다. 한국 야구 팬의 기억에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순간이 가물가물하듯 이젠 아득한 과거가 됐다.
이러니 이번 월드컵에 잉글랜드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잉글랜드는 준결승전에서 월드컵 최다 우승(5회)을 자랑하는 최강 호주를 제압했다. 반대편 4강에선 뉴질랜드가 크리켓이 곧 종교로 통하는 인도를 물리쳤다. 패색이 짙어지던 순간 인도 현지에선 충격으로 두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4일 '크리켓의 고향(The home of cricket)'이라 불리는 로즈(Lord's)에서 결승전이 펼쳐졌다. 잉글랜드와 뉴질랜드는 크리켓에선 매우 드물게 '수퍼 오버(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에서도 마지막 공 하나로 승부가 갈렸다. 크리켓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란 찬사가 나왔다.
월드컵 우승은 단 몇 나라 국민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수많은 종목이 탄생한 '스포츠의 고향' 잉글랜드도 축구는 1966년, 럭비는 2003년(역시나 종주국이지만 딱 한 번 우승했다)이 마지막이었다. '종가'가 오랜만에 자존심을 되찾았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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