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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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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농구코트 위 또 다른 프로…KBL 최장수 여성 `포청천` 홍선희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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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년째 농구 코트에 서고 있는 홍선희 KBL 심판이 지난 13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 안양 KGC의 경기를 앞두고 농구공을 든 채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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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장수할 수밖에 없는 직업군에 프로스포츠 심판이 빠질 수 없다. 2008년 이후 한국여자프로농구(WKBL)와 한국프로농구(KBL) 무대에서 수많은 경기를 거쳐온 홍선희 심판의 삶도 마찬가지다. 야유를 퍼붓는 관중 앞에서도 당당함을 유지한 채 농구 경기에 고도로 집중해야 하고,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거칠게 항의하는 거구의 선수, 코치들을 진정시키다 보니 시즌 중에는 그야말로 매일 녹초가 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홍 심판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체육관 구석에서 조용히 스트레칭을 하며 경기를 준비한다. 흐름이 거칠어질 때면 휘슬로 바로잡는 단호한 모습 뒤에 "농구를 사랑하는 만큼 이렇게 가까이에서 농구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며 웃는 모습까지 갖춘 그를 농구 코트의 조연으로만 남겨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KBL 경기가 끝난 뒤 잠실실내체육관을 떠나는 그를 붙잡아 세우고 밤이 늦도록 심판의 삶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이른 시간부터 경기장에 와 있더라. 경기 날에는 어떤 준비를 하나.

▷2시간 전 도착이 원칙이다. 경기 날 이동 시에는 정장을 입는 규정이 있어서 도착 후 옷을 심판복으로 갈아입고 미팅을 한다. KBL 분석 시스템이라는 자체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늘 경기 팀들의 선수를 파악하고 중점적으로 볼 부분을 체크한다. 20분 전에 경기장에 나가 선수들 옆에서 같이 몸을 풀고, 선수 소개를 시작하는 10분 전에는 감독들에게 인사하고 경기를 준비한다.

―농구의 매력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시절 옆 학교 농구부 코치 선생님이 키가 크다며 저를 스카우트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152㎝ 정도였다. 체육관에 가서 공을 던져보니 그 이전까지 운동이라고는 수영 정도밖에 안 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딸만 셋이라서 아버지는 한 명쯤 운동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는지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막상 농구를 해보니 힘들긴 했는데 다른 스포츠에 비해 화려한 맛이 있더라. 코트, 유니폼 등이 다 예쁘고 키가 큰 선수들이 하는 플레이 자체도 볼거리가 많았다. 손으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할 수 있는 스포츠라서 기술이 굉장히 다양하고 관중도 가까이에서 보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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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와 관련된 많은 직업이 있는데 어떻게 심판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을 고민하게 됐다. 아직 여자 프로농구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여서 졸업 후 실업 리그로 가든가, 아니면 대학에 가서 체육을 전공하던 때였다. 선수로서는 꿈을 완벽히 이루지 못한 터라 농구로 뭔가 할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심판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국제심판 중에 여자 심판은 아예 없었다. 2000년 2월 대한농구협회(KBA)에서 하는 심판 강습회에 참석하고 마음을 굳혔다.

―WKBL에서 7시즌 활동하다가 남자 리그로 넘어왔다. 어떤 차이를 느끼고 있는가.

▷KBA 2급, 1급 심판을 따낸 뒤 국제심판까지 다 하고 WKBL로 옮겼다. 아마추어 대회는 촬영 영상이 없어서 제 모습을 리뷰할 수가 없었는데 프로로 넘어오니 여건이 달랐다. WKBL에서 8년 동안 활동한 후에 KBL로 넘어왔다. 남자 리그가 아무래도 우리나라 농구의 최고 농구이기 때문에 교육이나 관리 체계 측면에서도 최고 무대다.

―심판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 선수 출신으로 밑에서 위로 계속 올라왔다. 선수 출신이 아니어도 매년 나오는 공고에 맞춰서 준비하고 지원해 들어온 심판도 있다. 다만 프로리그에 올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경력을 쌓고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체력과 룰 숙지는 당연하고, 룰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도 필요하다. 경기를 많이 보려면 2급(초·중등) 심판부터 따서 1급(고등·대학·일반)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급을 따서 활동 경험을 쌓아야 국제농구연맹(FIBA) 심판도 가능하다.

―경기가 없는 평소에는 무엇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KBL 심판이 총 20명이고 한 경기에 3명이 들어간다. 시즌 중 경기 배정자는 해당 체육관으로 가고 나머지는 오전에 KBL 사옥으로 출근한다. 다 같이 모여 전날 경기 리뷰를 하고 논란이 될 만한 장면들에 대해서는 서로 토론도 한다. 오후 2시부터는 사옥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남자 심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서 최근에는 PT도 받는다. 심판이 가만히 있거나 사이드라인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한 경기에 6㎞ 정도를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저녁에는 분석조를 나눠 그날 경기를 시청한다. 상당히 바쁘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일이 직업이 되다 보니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판정하는 순간에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끝나고 경기를 다시 보면 아무리 집중해도 틀릴 때가 있더라. 경기 분석 앱에 오심 부분이 아예 체크돼서 올라온다. 물론 휘슬을 불 때는 확신하고 불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의 각도에 따라 잘못 볼 때도 있다. 회사원이 자기 일을 못하면 질책을 받을 수 있듯이 내 고과도 점수로 평가된다. 매년 10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니 그게 생활인으로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를 저지르면 내년에 나를 안 쓸 수도 있으니 당연히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내 고과를 떠나서 나 역시 등번호를 달고 있는 프로 심판이 아닌가. 코트 위 선수만 프로가 아니라 심판도 프로다. 오심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심판은 한 명도 없다.

―감독이나 선수들이 판정에 대해 거칠게 항의도 할 텐데.

▷처음에는 항의를 받을 때 '내가 덩치가 작은 여자여서 나에게 더 저럴까' '나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들은 승부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자기 일을 했을 뿐이더라. 처음에는 괜히 약해 보이기 싫어 무표정으로 일관하면서 판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됐다. 지금은 감독님들에게 판정 이유를 설명드릴 때도 있다. 그러면 납득하고 돌아가실 때도 있다. 무조건 웃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감독이고 선수고 엄청 날카로운데 심판까지 날카로워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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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라는 일에서 느끼는 매력이 있나.

▷어릴 때부터 농구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선수생활도 길게 해왔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모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코치도 했었다. 그만큼 농구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고 이제는 심판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심판이 KBL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속상한 적도 있고, 선수나 팬들이 상대 팀 대신 심판과 싸우려 드는 날은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심판은 특정 팀을 응원하는 팬이나 지도자와는 달리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 같이 뛰고 호흡하면서도 유일하게 객관성을 유지한 존재라는 자부심이 있다. 재작년에는 FIBA 심판위원장이 한국에 교육차 방문해 우리 운영을 보고 고의적으로 속공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파울을 적용하는 규정이 좋다며 국제 룰에도 추가했다. 그때는 세계 농구에 우리가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가장 기억에 남는 판정이 있을까.

▷국제심판이 된 뒤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하는 월드리그에 갔다. 선수들이 볼을 뺏고 뺏기는 상황에서 한 선수가 눈을 맞았는지 울더라. 당시에 바로 눈치채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상대 손톱이 눈에 스쳐서 피가 났던 것이다. 내가 다치게 한 것은 아니지만 바로 불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반성했다. 반대로 내가 잘한 판정은 골라서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옳게 판정을 내리는 것은 심판으로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자 심판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 길을 걸으려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멋진 대답을 주고 싶지만 꾸준히 하는 것밖에 없다. 늘 같은 농구 경기는 없고 언제나 새로운 상황이 나오기 때문에 오늘 판정을 올바르게 했다고 해도 내일은 오심을 낼 수도 있다. 39분 잘했어도 마지막 10초를 남겨두고 오심을 내서 경기 결과가 바뀌면 안된다. 선수가 못해서 바뀌는 것은 경기의 일부분이지만 심판이 못해서 바뀌는 것은 사고다. 그러다 보니 꾸준하게 하기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쉽지 않지만 별수 있나. "언니가 KBL 무대에 있어줘서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여자 심판 후배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

―농구뿐 아니라 최근 축구와 야구 등 다른 프로스포츠에서도 비디오판독의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본인 의견이 있다면.

▷내가 모든 심판을 대변할 수 있는 이는 아니지만 어찌됐건 판정이 맞게 나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니 사람이 못 본 부분을 기계가 잡아주면 감사한 일이라고 본다. 다만 농구처럼 신체 접촉이 많은 운동에서는 비디오판독을 너무 자주 쓰면 경기 흐름이 끊기니 적당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판을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농구가 좋아서 심판 일에 뛰어들었고,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이들이 하는 직업을 갖게 됐으니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좋아서 한 일이니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프로농구(NBA) 최초 여성 심판이었던 바이얼릿 파머는 프로농구 선수들이 스킬 트레이닝하듯이 자신도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운동을 했더라. 나 역시 해온 날보다 앞으로 할 날이 적을 것 같아서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며 경쟁력을 키우려는 중이다.

▶▶ 홍선희 심판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인하대와 수원대, 한세대 스포츠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2000년부터 대한농구협회(KBA) 심판으로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국제농구연맹(FIBA) 심판 자격으로 다수의 국제대회 심판을 맡았다. 여자프로농구를 거쳐 2015년부터 한국프로농구 심판을 맡고 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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