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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한국식 스카우트 콤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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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KBO 정운찬 커미셔너가 한 구단주를 만났을 때 얘기다. 보다 나은 야구를 위한 의견을 나누던 중 구단주는 “한국식 스카우트 콤바인을 하자”고 제안했다.

‘스카우트 콤바인’은 미국프로풋볼(NFL)의 신인 지명 예비행사다.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한 군데 모여서 일종의 ‘체력 테스트’를 펼친다. 40야드 달리기, 누워서 역기들기, 수직 점프, 멀리뛰기, 세 방향 고깔 터치, 20야드와 60야드 왕복달리기 등의 종목을 겨룬다. 기초 운동능력이 중요한 프로풋볼 종목 특성 때문이다.

스카우트 콤바인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은 실제 드래프트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일종의 예비 경선이다.

구단주가 제안한 ‘한국식 스카우트 콤바인’은 조금 다르다. 체력 검사가 아니라 건강 검진에 가깝다. 드래프트 대상 선수들을 병원에서 정밀 검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부상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정 커미셔너는 “콤바인의 목적이 부상 선수를 배제하려는 게 아니다. 콤바인 검진 때 좋은 몸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고교 시절 혹사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강한 인센티브가 작동된다”고 말했다. 실력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야구계 전체에 전달된다. 검진 비용을 모두 KBO가 대는 방식이다.

실제 KBO리그 주요 신인 투수들은 입단 뒤 ‘수술’이 통과의례처럼 됐다. 2016년 1차지명 두산 이영하, 2019년 1차지명 LG 이정용이 데뷔 전에 수술대에 올라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6년 1차지명 NC 박준영도 첫 시즌 중반 수술을 받았고, 2017년 2차 1라운드 KIA 이승호(현 키움)도 마운드보다 수술대가 먼저였다. 2018년 2차 1라운드 삼성 양창섭도 첫 시즌을 치르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신인 지명 때의 기대감이 야구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팔꿈치 수술이 구속 증가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미 존 수술 후 복귀해서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확률은 49.9%밖에 되지 않는다. 동전 던지기 수준의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KBO리그는 지금까지 거꾸로 행동했다. 스카우트 대상 선수들의 건강 검진을 ‘금지’시켰다. 다 같이 모르는 게 ‘공정’하다는 이상한 이유였다. 개인 건강 정보의 민감성을 앞세우는 논리였지만, 결과적으로 고교선수들은 높은 순위 지명을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됐다.

한국식 스카우트 콤바인을 넘어 메이저리그식 전자의료기록(EMR)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 메이저리그는 2010년부터 선수들의 부상, 치료 관련 기록을 전산화했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의 보도에 따르면 선수들의 통증과 부상, 회복 과정, 치료 내용 등은 물론이고 진통제 2알 복용 등의 세세한 사실도 모두 전산 입력해 관리한다. 트레이드나 선수 영입 때 ‘메디컬 테스트’가 남았다는 뜻은 이 기록에 대한 검토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전자의료기록 열람은 맨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다. 선수 영입 구단은 24시간 동안 해당 선수의 의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야구는 기록의 종목이다. 기록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야구를 발전시켰다. 개인의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야구보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야구가 더 강하다는 사실은 최근 꾸준히 증명되고 있다. 부상과 이를 치료하는 공식 기록과 데이터가 쌓이면, 예방의 길이 열린다. 건강한 야구가 더 좋은 야구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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