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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3 (금)

    [사유와 성찰]과거가 현재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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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회에서 만족과 행복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예화가 있다. 작은 섬마을의 가난한 어부가 보트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마침 휴가를 온 한 사업가가 묻는다.

    “당신은 왜 매일 바다에 나가 열심히 고기를 잡지 않습니까?”

    어부가 되묻는다.

    “왜 그래야 하지요?”

    사업가는 말한다.

    “고기를 많이 잡아 돈을 벌고, 어선을 여러 척 사고, 큰 집도 짓고, 요트도 사고, 부자가 되는 겁니다.”

    어부가 묻는다.

    “그다음에는요?”

    “그런 다음에는 편안히 낮잠을 즐기고 저 멋진 바다를 감상하는 겁니다.”

    어부가 웃으며 말한다.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노벨 문학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서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가 로마 정복의 뜻을 밝히자 참모 키네아스가 묻는다.

    “왕이시여, 로마를 정복하신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피로스는 이탈리아 전체를 차지하겠다고 답한다.

    “그다음에는요?”

    왕은 시칠리아, 리비아, 카르타고까지 정복하겠다고 말한다.

    키네아스가 다시 묻는다.

    “모든 곳을 정복한 다음에는요?”

    “그때가 되면 나는 마침내 편히 쉬며 즐겁게 살 것이네.”

    그러자 키네아스가 되묻는다.

    “왕이시여, 지금 당장 그렇게 하시는 것을 누가 막고 있습니까?”

    이 일화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철학 에세이 <피로스와 키네아스>에 언급되며, 그 기원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다. 두 이야기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훗날로 미루고 있다면, 물질적 풍요와 권력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삶은 현재에서 과거를 소환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섬마을 어부와 키네아스는 21세기의 호모 데우스에게 묻는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당신들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삶이 평온하십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마음의 평화는 단지 마음 하나만 잘 다스리면 얻어지나요? 먹고사는 생계가 불확실하고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 과연 안빈낙도의 삶을 살 수 있는지요?”

    물질과 마음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붓다와 맹자,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를 떠올린다.

    붓다는 재화의 고른 분배를 역설했다. 맹자 또한 백성의 생업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방탕해진다며 항산(恒産)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르크스 역시 먹고 입고 거주하는 물질적 기본 토대 위에서 도덕과 학문, 예술의 발전이 가능하다 했다. 이처럼 외적 물질과 내적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시대를 막론하고 민중의 고통은 불안정한 항산에서 비롯된 항심(恒心)의 붕괴였다. 인공지능 시대인 오늘, 우리의 불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공지능은 감정과 창의성까지 넘본다. 더구나 일자리를 잃고 생계 기반이 흔들린다면 인간다운 삶은 더욱 위태롭게 된다.

    AI 3대 강국의 코스피지수가 곧 우리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실존을 지탱하는 항심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동시에 그 항심을 가능하게 하는 항산의 토대를 사회 전체에 고르게 분배하는 일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붓다와 맹자, 마르크스가 던진 질문은 인공지능 문명 앞의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모두가 항심을 지킬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삶의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국가는 가칭 ‘국민행복설계위원회’라도 만들어 항산과 항심의 건강한 생태계를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향신문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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