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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배구 황제 김연경

승률 5% 뚫은 '도쿄의 기적'…김연경 '라스트 댄스' 두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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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도쿄올림픽 ◆

매일경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 터키와의 경기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뒤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하고 있다. [도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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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트 매치포인트. 김연경의 마지막 스파이크가 터키 코트 바닥에 꽂히면서 한국 여자배구의 기적이 쓰였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9년 만에 올림픽 4강에 진출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터키와의 8강전에서 세트 스코어 3대2(17대25, 25대17, 28대26, 18대25, 15대13)로 승리했다. 세계랭킹 13위가 4위를 잡아내는 짜릿한 이변이었다. 한국이 세계적인 배구 강호 터키를 상대로 국제대회에서 승리한 건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이날 승리 전까지 6연패 중이었으며 가장 최근인 6월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도 1대3으로 패했다.

전 세계 스포츠 베팅 사이트들도 터키의 승리 가능성을 94.7%로 제시했다. 그리나 경기가 시작하고 137분 후 터키 선수들은 코트 바닥에 주저앉아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터키를 상대로 4강 기적을 완성한 이날 네이버 중계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숫자만 무려 140만명에 달했다.

기적적인 승리의 중심에는 역시 '여제' 김연경이 있었다. 도쿄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라고 선언한 김연경은 터키전에서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을 치고 모든 것을 쏟아냈다. 매 순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팀 최다인 28점을 기록했다.

전형적인 사이드 공격수가 아님에도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강공과 페인트 공격, 연타를 구사하며 터키 수비를 흔들었다. 김연경은 이날 53번의 공격 시도 중 26번을 성공시켰다.

공격보다 가치 있는 건 수비였다. 여자배구에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는 상대팀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전술을 취한다. 가장 위협적인 김연경이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김연경이 후위로 빠졌을 때 서브나 공격 시도를 김연경 쪽으로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하지만 김연경은 수비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은 16개의 디그(스파이크나 백어택을 받아내는 리시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수비 전문인 리베로 오지영(GS칼텍스·15개)보다도 많은 수치다. 사실상 두 번째 리베로 역할까지 완벽히 수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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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터키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에 패한 뒤 망연자실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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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마지막 올림픽'에서 선수단의 사기를 100% 책임졌다.

대표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힘차게 기합을 넣으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또한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선수단의 투쟁심을 부추겼다. 김연경은 승부처였던 3세트 때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하며 네트를 흔들어 옐로카드를 받았다. 4세트 때도 심판에 항의하다 레드카드까지 받았다. 경기 뒤 김연경은 "1세트부터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가 항의하면 보상 판정을 하더라"며 "항의가 통하는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 번쯤 경기를 끊어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며 계산된 행동임을 털어놨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서 그의 목소리는 이미 반쯤 쉬어 있었다. 김연경은 "올림픽 개막 전엔 누구도 우리의 준결승 진출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솔직하게 처음 8강 상대가 터키로 결정된 뒤엔 나도 준결승 진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젯밤엔 (오늘 경기가 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줄 알고)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계속 뒤척이다 일어났다"고 고백했다.

이날 위대한 승리는 김연경 혼자만의 힘으론 부족했다. '클러치 박' 박정아(한국도로공사)는 높이를 앞세운 상대 블로킹에 터치아웃을 유도하는 공격을 자주 시도하며 16점을 올렸다. 양효진(현대건설)이 6개의 블로킹 득점을 올렸고 라이트 김희진(IBK기업은행)도 결정적인 블로킹 득점 3개로 고비 때마다 흐름을 가져왔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5세트 때 모두 승리하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강호 도미니카공화국을 3대2로 제압했고, 라이벌 일본을 마지막 세트에서 잡고 8강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당시 상대 매치포인트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연속 득점으로 경기를 듀스로 몰고 간 뒤 16대14로 드라마틱하게 경기를 뒤집어 배구팬들을 열광케 했다. 사실상 선수들도 승리 가능성이 낮다고 여기던 터키와의 경기 마지막 세트에서도 한국은 승리했다.

이번 대회 출전국 중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8강에 생존한 한국은 2012 런던 대회 이래 9년 만에 4강에 올라 아시아 배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최초로 메달(동메달)을 따낸 바 있다.

6일 준결승에서 승리하거나 3·4위전에서 이기면 45년 만에 다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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