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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텍사스' 추신수 MLB 활약상

추신수, 존중과 이해 없이 태극마크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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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40, SSG)의 말들이 며칠 동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애초에 의도했던 게 이런 논란이라면 의도는 적중했다.

하지만 ‘깨어있는 선배’이자 성공한 이로서 태극마크, 한국의 시민의식, 스포츠계 선후배 문화, 부족한 인프라 등에 대해 두루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면 추신수의 오판과 오만은 지나쳐도 한참은 지나쳤다.

애초에 존중과 이해 없이 태극마크를 감히 논해선 안 됐다. 한국야구가 WBC에 사활을 걸고 매진해야 할 시기에 전혀 관계 없는 제3자의 몰이해, 거기다 인지 공감능력이 한참 떨어진 발언이 대한민국야구대표팀에 대해 누적된 부정적인 인식만 더 키운 모양새다. 추신수 개인으로도 ‘컬처 체인저’로서 쌓은 선한 영향력이 곡해되고,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과거 행보들만 더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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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의 문제적 발언들이 수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존중과 이해 없이 쉽게 한 발언들은 결코 깨어있는 지적이 될 수는 없다. 사진=천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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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가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 방송 ‘DKNET’에 출연해 했던 여러 발언들이 대중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지 못하는 걸 넘어, 며칠째 뜨거운 질타를 받고 있다.

온라인이나 설 명절 사람들이 모인 오프라인에서도 ‘추신수의 말’들이 화두에 올랐을 정도다. 추신수는 이 방송을 통해 문제의 말들을 그야말로 쏟아냈다. 한두 가지 사안도 아니다.

‘안우진이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안타깝다.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안우진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 선배들이 가만히 있는다.’ ‘일찍 태어났다고 다 선배가 아니다.’ ‘WBC에서 새로운 선수를 뽑았어야 했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한국은 인프라 때문에 더블A 수준’ ‘되묻고 싶다. (국가대표로) 안 나갈 이유가 있나. 아프지 않은데 왜 굳이 안 나가겠나.’ ‘스토리를 모른다’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문제적 발언을 했다.

그런데 추신수가 말한 내용과 의미들을 뜯어보면 레전드로서의 앞선 시각이나 한국야구에 대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에서 부와 성공을 경험한 이로서 가진 선민의식이나 시대착오적인 야구 내부인으로서의 집단편향성만이 두드러진다. 거기다 그런 발언 속에 자신에게 따라 붙는 ‘국가대표 먹튀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해명이나 안우진의 ‘학폭 논란’에 대한 잘못된 두둔에 긴 시간을 할애해 공감 또한 끌어내지 못하고 빈축만 샀다.

추신수가 착각했고, 실수한 첫 번째 쟁점은 학교폭력은 더는 관용의 사안이 아닌 한국사회의 거대악으로 많은 이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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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가 섣불리 언급한 학교폭력은 쉬운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어렵고 무거운 한국 사회의 거대악이며 문제다. 사진=천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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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고교시절 학교폭력 징계를 받아 올림픽 등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영구적으로 무산된 안우진(24, 키움)이 WBC 대표팀에도 뽑히지 않은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추신수는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릴 때 잘못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뉘우치고 출장정지 징계도 받았다. 그런데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갈 수가 없다”고 지적하며 “박찬호 선배 다음으로 재능 있는 선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 선수를 감싸주려는 게 아니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했다. 하지만 제3자로서 들리고 보는 것만 보면 정말 안타깝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추신수는 “야구 선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일찍 태어났다고 해서 선배가 아니다. 불합리한 부분을 보고 있는 후배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근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야구 일찍 했다고, 먼저 태어났다고 선배가 아니다. 목소리를 내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근데 모두 지켜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추신수는 ‘한국 사회를 불합리한 집단’으로 매도하게 됐다. 또 학교폭력에 경종을 울리는 대신, 내부자의 시선으로 분명 감쌌고, 피해자의 용서나 가해자의 뉘우침이 없었던 사건을 ‘불합리한 부분’으로 평가했다. 거기다 그간 한국야구에 기여했던 선배들을 ‘나이만 먹은 이’라고 폄훼하는 시각까지 내비쳤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수년간 한국사회에 중요한 화두였던 ‘학폭 논란’은 이른바 운동부나 스포츠 집단 내부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동시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사회의 거대한 악이다. 추신수는 안우진이 과거 사안에 발목 잡혀 ‘용서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는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반대로 대한체육회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강력한 징계는, 아마스포츠에 수십년간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폭력문제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안우진의 타산지석이 수많은 피해자들을 막았고, 우리 사회에 ‘집단적 폭력’에 대한 화두를 제기했다. 이는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글로리’등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환기된 한국사회의 가장 어두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맥락이나 이해들을 모두 배제한 추신수의 ‘제 식구 감싸기 식’ 발언은 ‘안우진 학폭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신음하고 있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몰이해를 더 키우는 발언일 뿐이다. 결코 깨어있는 의식으로 제기한 ‘용기 있는 발언’으로 평가 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추신수가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폭력이 영원히 근절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공감을 받았을 것이다. 한 야구인의 문제를 한국 사회로까지 확장해 발언할 사안은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우진의 사안은 제3자가 대신 나서 용서할 수 있는 사안 또한 아니다. 철저히 피해자의 몫인 ‘용서’를 추신수가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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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태극마크를 통해 후배들이 성공하고 미국야구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선배들이 열어줘야 한다는 논리로 WBC 대표팀 발탁의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추신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WBC 대표팀에 선발된 많은 선수들은 개인의 영달 대신 헌신의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 중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추신수가 실수한 지점은 더 있다. 국가대표는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거나 ‘미국야구 진출을 위한 과정’ 혹은 ‘태극마크의 무게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깃털같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추신수는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 일본에서도 ‘언제까지 김광현이냐’라는 기사가 나온다. 일본만 봐도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 나라면 미래를 봤을 것이다. 당장의 성적보다도 앞으로를 봤을 것 같다. 새로운 선수를 뽑았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강도 높게 이번 WBC 대표팀 엔트리를 비판하면서 ‘선배들이 재능 있는 후배들의 성공을 위한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긴 시간 동안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추신수는 김광현(34, SSG), 양현종(34, KIA), 김현수(35, LG)의 실명을 언급하며 이들을 대체할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추신수가 ‘실력은 인정한다’면서 ‘의도하지 않게’ 지목한 이들은 그간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헌신했고, 지금도 대표팀의 가장 주축인 핵심선수들이다. 추신수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이후 단 한 번도 국가대표를 하지 않았던 그 긴 시간 동안 ‘말’보다 ‘행동’으로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였던 이들이다. 묵묵히 태극마크를 달고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던 ‘존중받아야 할 레전드’이자 ‘동료’들이다.

추신수는 국가대표 세대교체의 결과를 통해 안우진이나 문동주(19, 한화) 같은 한국야구의 빛나는 재능들이 미국야구로 진출해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선배들이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들은 마치 국가대표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우선 존재하거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그릇된 시각이 담긴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동시에 현재도 국가대표를 위해 개인의 영달은 차치하고 우선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마음으로 헌신하며 WBC를 준비 중인 후배들을 모욕한 발언이 됐다. 실제로 이번 WBC 대표팀에 발탁된 대다수의 선수들은 ‘개인의 희생’을 언급하기 보다는 ‘한국야구의 부흥’이 될 수 있는 또 한 번의 전기로 이번 대회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쏟을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추신수는 이런 태극마크의 무게를 제3자의 말 몇 마디로 재단하면서, ‘새로운 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 기술위원회, KBO 등의 깊은 고민이 담긴 결정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셈이 됐다.

추신수가 KBO리그로 복귀한 이후 했던 많은 ‘작심 발언’이나 ‘기부’등은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추신수가 수많은 논란의 발언의 기저엔 한국야구나 한국사회를 낮게 보는 ‘선민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추신수는 라디오 발언을 통해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한국야구는 더블A 수준’이라며 미국 마이너리그의 하부리그 수준으로 KBO리그를 정의했다. 오랜 기간 미국야구나 일본야구가 한국야구를 일방적으로 평했던 ‘그 시선’을 고스란히 대입한 표현이다. 이는 한국야구 인프라 개선을 위한 ‘충격 요법’의 발언으로 보기엔, 최소한의 존중조차 결여 돼 있는 발언이다.

특히 프로야구의 역사와 야구 국가대표팀의 수많은 역사 속에서 많은 이가 기여하고 노력했던 과정을 모두 무시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좋은 지적도 언제나 존중과 이해가 우선돼야, 깊은 고민 이후 행동이 동반해야만 그 가치가 빛난다. 추신수는 성공한 전직 메이저리거다. 또한 빅리그에서 오랜 기간 선진야구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신수가 ‘한국야구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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