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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오늘의 피겨 소식

그림·댄스 즐기는 피겨 요정 이해인 "다음 갈라는 뉴진스의 하입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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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를 바라보며 말을 잘 들으라고 타이르는 이해인.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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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짜… 안 되면 네 탓이야."

은반 위 우아한 모습과는 달랐다. 스케이트에게 말을 잘 들으라며 샐쭉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소녀다. 세계피겨선수권 은메달리스트 이해인(18·세화여고)을 소속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해인은 피겨 선수로서의 꿈과 고충,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들려줬다.

이해인은 지난달 일본 사이타마 수퍼아레나에서 열린 2023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총점 220.94점을 받아 2위에 올랐다. 2013년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한국 선수로서는 10년 만의 메달이다.

이해인은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돌아와 "나에 대한 의심을 떨쳤다"고 했다. 이해인은 "실수는 잘 안 하는데, 점수가 생각보다 꾸준히 늘지 않았다. '나도 저런 점수를 받아볼 수 있을까'란 의심이 있었다. 4대륙선수권(금메달) 때 자신감이 생겼고, 이젠 나를 믿게 됐다"고 했다.

쇼트프로그램 2위에 오른 뒤 프리스케이팅에 나선 이해인은 혼잣말을 한 뒤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이해인은 "'4대륙 때처럼만 하자'고 했는데 바램이 이뤄졌다. 쇼트를 잘 해서 프리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행복하게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현정 코치님이 '할 수 있어'라고 하셔서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쇼트와 프리 사이 휴식일에 김진서 코치님, (김)채연이와 잠깐 놀러가서 오락실도 가고 기분전환한 게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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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메달을 목에 건 이해인.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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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배웠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막내딸의 운동 신경을 엿본 부모의 지지 덕분에 이해인의 운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바퀴를 더 도는)악셀을 제외한 3회전 점프 5종(토루프, 루프, 살코, 플립, 러츠)을 모두 익혀 기대주로 꼽혔다. 2019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우승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5위에 올랐다.

하지만 피겨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 왔다. 키가 자라면서 무게중심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해인은 "'왜 피겨 선수가 됐을까' 후회한 적도 있다. 한 번 안 좋았을 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지만 계속 안 좋아서 힘들었다. 엄마한테 '나 (피겨)안 해'라고 했다. 그런데 말만 그러고는 '링크장 가자'고 했다"며 했다. 이해인은 "엄마 키가 1m72㎝다. 나도 더 클까봐 걱정인데, 아빠한테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다"고 웃었다.

힘이 들 때 도움이 된 건 그림이었다. 이해인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을 1년 정도 다녔다. 하지만 훈련장을 바꾸고, 시간이 모자라 더 다니진 못했다. 그래도 혼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자주 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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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이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벡설공주 캐릭터. 이해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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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이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 캐릭터. 이해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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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자주 그림을 그려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한다. 이해인은 "주변에서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니까 선수들에게 선물도 해준다. (차)준환이 오빠, (유)영이 언니, (이)시형 오빠, (경)재석 오빠… 미하라 마이(일본), 오드리 신, 일리아 말리닌(이상 미국) 등 외국 선수도 그려줬다. 다들 좋아했다"고 말했다. 겨울왕국의 엘사나 디즈니 백설공주 같은 만화 캐릭터도 수준급으로 묘사한다.

외국어 공부에도 재미를 붙였다. 이해인은 "요즘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팀 트로피가 곧 일본에서 열리는데 써보고 싶다"며 "'고양이의 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 요즘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도 봤다"고 했다. 영어도 곧잘 한다. 이해인은 "체계적으로 배운 건 아니다. 선수들과 대화하면서 조금 늘었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통역 없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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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에서 애프터 라이크에 맞춰 갈라 연기를 펼친 이해인.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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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은 지난 시즌 갈라프로그램 곡으로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를 선택했다. K팝 곡에 맞춘 발랄한 모습에 해외 팬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해인은 "애프터 라이크는 최근에 힘들 때 많이 들었던 노래다. 롤린은 긴장했을 때 풀기 위해 들었다. 내겐 고마운 노래들이라 골랐다. 사실 연기를 할 땐 오글거리기도 했는데 재밌었다"며 "다음엔 교복을 입고, 뉴진스의 하이프 보이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피겨 선수의 일과는 빡빡하다. 비시즌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스케이팅 훈련을 하고, 4시 이후엔 지상훈련을 1시간 반 동안 한다. 다음엔 코어 강화를 위한 필라테스 수업을 받는다. 이해인은 "댄스 수업도 받는다. 훈련 시간에 운동하기 싫을 땐 열량 소모를 위해 춤을 춘다"고 했다. 체중 관리도 철저하다. 이해인은 "떡볶이와 치킨을 좋아한다. 세계선수권 다녀온 뒤에도 먹었다. 많이 먹으면 안 되니까 조금 먹고, 언니한테 양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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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이해인 선수가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올댓스포츠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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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롤 모델'은 김연아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꼽아달라고 하자 "전부 다"라고 한 뒤 고민했다. 고민 끝에 꼽은 3개는 레미제라블(2012~13시즌 프리), 지젤(2011 쇼트), 박쥐 서곡(2007~08 쇼트)이다. 이해인은 "아무래도 처음 연아 언니 아이스쇼 갔을 때 본 레미제라블이 기억에 남는다. 박쥐 서곡은 푸른 의상도 예쁘고, 언니가 발랄한 곡을 잘 하니까 좋다. 지젤은 한 번 밖에 못 봤지만, 캐릭터 감정선을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이해인은 같은 소속사인 김연아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빠르고 힘 있는 스텝은 김연아를 연상케 한다. 이해인은 "대회 때 떨리면 스피드가 줄어들거나 표정이 굳을 때가 있다. 언니는 연습 때보다 경기 때 더 잘 보여준다. 압박 속에서도 깨부수고 할 걸 다 하는 게 가장 멋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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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이해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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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가장 큰 꿈은 올림픽에 서는 거다. 이해인은 "올림픽은 꼭 한 번 출전하고 싶은 무대"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엔 나가지 못했다. 2021년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여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직전 세계선수권(10위)에서 선전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2022 세계선수권에서 7위에 올랐고, 세 번째 도전에선 마침내 메달까지 거머쥐었다.

비장의 무기 트리플 악셀도 가다듬는다. 이해인은 올 시즌 초반엔 트리플 악셀을 프로그램에 넣었지만, 안정성을 위해 포기했다. 이해인은 "많이 연습할 땐 다섯 번 뛰면 두 세 번 성공했다. 다음 시즌엔 꼭 선보이고 싶다. 점점 발전한 모습을 보여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까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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