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이혼할 결심’의 한 장면. 사진 ㅣMB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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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숙려캠프’를 본 적이 있는데, 세상에 별별 인간이 다 있구나 싶더라고요. 저 정도면 그냥 이혼하지 왜 저러고 사나 싶은 거죠.”
결혼 안 한 30대 초반 후배는 ‘이혼 예능’을 보고 피로감을 느꼈다고 했다. 안 그래도 팍팍하고 고단한 삶, 전쟁과 다를 바 없는 ‘막가파 부부싸움’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는 시청 소감을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본의 아니게 현실부부의 ‘속살’까지 보게 되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이혼 프레임’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 하다고 했다.
‘이혼’이 대세 콘텐츠로 TV를 장악했다. 더 과감하고 솔직하게 민낯을 드러내면서도, 자극적인 ‘싸움 중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TV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갈등 진단과 솔루션 해법까지 내놓는다. 이혼 예능들도 차츰 진화해 ‘관계 회복’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정규 편성으로 돌아온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이혼숙려캠프’
파일럿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한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과 JTBC ‘이혼숙려캠프’는 비슷한 시기 정규 편성으로 컴백해 첫회부터 화제를 모았다.지난 18일 첫 방송된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은 ‘가상 이혼’이라는 파격적인 콘셉트의 관찰 리얼리티다. 일반인이 아닌 이혼을 고민하는 스타 부부들이 출연해 파급력은 더욱 컸다.
파일럿에 이어 출연한 요리 연구가 이혜정은 과거 남편의 ‘잘못’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해 힘든 속내를 토로했고, 전 야구선수 최준석은 20억 사기를 당한 후 경제 문제로 수렁에 빠진 사연과 아내와 대화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 등 위기에 놓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약 파문으로 논란을 일으킨 로버트 할리 부부 출연도 예고됐다. 윤세영 PD는 로버트 할리 촬영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부부도 굉장히 진심으로 촬영했다”며 “마약 사건에 대한 상황적인 이야기를 아내, 가족들에게도 전혀 얘길 하지 않으셨더라. 그런 부분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감없이 말해줬다”고 귀띔했다.
지난 15일 첫방송된 ‘이혼숙려캠프’는 이혼 위기 부부들이 합숙 과정을 거치며 전문가 상담과 부부 미션을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한 후 이혼할 지를 선택한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아내 사연으로 충격을 줬던 ‘시월드 부부’에 이어 마주치면 달려드는 ‘투견부부’, 자존감 브레이커 ‘잔소리 남편’, 음주가무로 위기에 빠진 부부까지 강력한 사연들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현직 이혼전문변호사가 집필한 ‘굿파트너’. 사진 ㅣ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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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예능·드라마 보며 위로받는 시대
현직 이혼전문 변호사가 대본을 쓴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는 상습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가스라이팅 당해 이혼 못하는 여자 등 매회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단 7회 만에 2024년 SBS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TV는 왜 이토록 이혼에 집중할까.
‘이혼 예능’이 잇따라 제작되는 현실에 대해 10년차 연예부 기자는 “이혼하고 싶어하거나 이혼한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니겠냐”며 “현실의 반영”이라고 했다.
또 다른 홍보대행사 대표는 “결혼과 출산은 줄어드는 반면 이혼율은 급증하는 현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위태로운 부부 얘기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에 공감에서 오는 쾌감이 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은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혼율 9위, 아시아에선 1위다. 지난 2022년 기준 국내 이혼 건수는 9만 3200건에 달할 정도로 많다.
한 제작사 대표는 “시청자들은 가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드라마 보다 더 스펙타클한 리얼에 관심을 보인다. 리얼리티 예능, 특히 이혼 예능에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다양한 재미 요소들이 많다”고 했다.
한 일간지 문화부 담당 기자는 “과거 ‘사랑과 전쟁’은 실화를 재현한 것이지만, 이건 실화 그 자체”라며 “욕하면서도 몰입하게 되고, 내 문제나 고민도 돌아보게 되고, 그러다가 자꾸 속 터지는 상황들을 보다보면 중간에 (시청을) 끊기도 하고 그게 반복되는 듯 하다”고 말했다.
유명인 부부의 이혼 예능을 보면서 나름의 위로를 받는다고 털어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 시청 후기를 찾아보면 “남들과 다를 것 같아보이는 그들의 삶도 나와 다를 게 없구나 싶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싶은 장면들이 있어 위로와 공감,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한다” “징글징글한 인연의 애증 대리경험” “내 남편은 그래도 최악은 아니구나”라는 반응들이 눈에 띈다.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을 연출한 윤세영 PD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스타 부부들도, 모두가 말 못할 사연과 인생 이야기를 안고 있다. 이들 부부의 사연이 세대를 넘어선 모두의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며 “출연 부부들이 갈등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도 각자의 해법을 찾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은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혼율이 9위, 아시아에서는 1위다. 사진 ㅣ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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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과 공감 사이…이혼 예능 불편하신가요?
리얼 버라이어티로 시작된 연예인 관찰 예능은 부모와 자녀까지 공개하는 가족 예능으로 확장됐고, 이제는 부부관계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각광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연자들은 도 넘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디까지 보여주느냐’는 수위를 두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부부 갈등 사이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정서적 아동학대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윤세영 PD는 “촬영 전부터 ‘미성년 자녀들이 이혼이라는 사실에 노출되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이혼이라는 과정 속 큰 축이 재산 분할과 양육권 문제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규 편성에서) 아이들이 일상 생활 정도에만 참여하고 이혼 과정이나 부부의 갈등 요소에서는 최대한 배제해 촬영했다”고 전했다.
마약 파문으로 논란을 일으킨 로버트 할리와 그의 아내. 사진 ㅣMB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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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요구되는 가운데, 벼랑 끝에 놓인 부부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혼숙려캠프’ 1화에서 가부장적인 남편이 전문가 심리치료를 받고 10년 넘게 자신의 어머니를 병간호한 아내에게 마침내 고맙다고 말하고, 그 말에 미소 짓던 아내의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했다.
‘한 번쯤 이혼할 결심’에 출연한 이혜정은 “저는 나름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출연 후) 돌아보게 되더라”며 “남편도 ‘내가 왜!’라고 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더라. 삶의 형태를 알게 됐다”고 했다.
재출연한 정대세는 “파일럿 방송을 통해 객관적인 내 모습들을 지켜봤고, 반성을 많이 했다. 아직 내 마음 속에 약간의 불순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제작진은 “현장에 있는 제작진도 스타 부부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같이 편들어가며 싸우기도 한다”며 “‘진정성’을 갖고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굿파트너’를 집필한 최유나 이혼전문변호사는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가 이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게 되길 바랐다”며 “그렇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이별을 예방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다르다는 것이 서로에게 큰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도 전하고 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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