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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1년 365일 중 절반 이상 해외에서 보내”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여성 스포츠 리더, 박주희 ISF 이사장의 이야기 [MK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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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는 2024년 11월 11일 새 이사장을 선출했다. 박주희 ISF 사무총장이었다.

박주희 이사장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스포츠 행정가다. 박주희 이사장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무·반도핑 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여성 최초 세계수영연맹(World Aquatics)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박주희 이사장은 한국 최초 국제도핑검사관이다. 박주희 이사장은 2007년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도핑검사관을 시작으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도핑 검사관, 2012 런던 올림픽 세계 도핑방지기구(WADA) 교육위원,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의무·도핑 분야 총책임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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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사진=이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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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이사장은 ‘2030 아시안게임 개최 후보지를 평가하는 아시아 4인 중 1명의 평가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박주희 이사장은 한국인 최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제올림픽아카데미(IOA) 과학 위원으로도 선임된 바 있다.

체육계는 박주희 이사장을 “국제무대를 누비는 한국의 스포츠 외교관”이라며 “이미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가고 있는 리더 중 한 명”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MK스포츠가 박주희 이사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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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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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후보에 뒤를 이어서 ISF 이사장을 맡게 됐습니다.

제가 자원봉사로 시작해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ISF에서만 10년 가까이 있었어요. 단계를 밟아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다가 수장의 역할을 맡게 된 듯합니다. ISF는 체육계 유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재단이에요. 문대성, 유승민 등 IOC 위원이 ISF의 수장을 맡았던 이유죠. 그만큼 책임감이 큽니다.

Q. 문대성, 유승민은 선수 출신 행정가입니다. 스포츠 행정가를 준비한 시간, 경험은 전임 이사장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부족하진 않습니다.

과찬입니다. 10년 동안 훌륭하신 이사장님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이젠 제가 주도적으로 ISF를 이끌어 나가 보고 싶어요. 앞선 이사장님들은 선수 출신 스타일이었다면, 저는 정통 행정가 스타일이라고 할까요(웃음). 큰 책임감이 따르는 직책인 만큼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Q. ‘자원봉사로 시작해서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스포츠와 인연은 어떻게 맺은 겁니까.

어릴 때 심장병을 앓았어요. 선천적인 거였죠. 태어났을 때부터 입술이 파란 아이가 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공부 잘하라’는 말을 안 들었어요. 부모님은 ‘공부 잘하라’는 말 대신 ‘건강하라’는 말을 해주셨죠. 부모님은 제게 ‘네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Q. 심장병은 완치가 된 겁니까.

어릴 때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부모님께선 어린 제가 수술을 받은 뒤 ‘두 번째 삶을 사는 거니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많이 접한 듯합니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서 대학 진학도 체육과로 한 것이고요.

Q. 행정가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된 겁니까.

스포츠를 아주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쭉 함께하고 있는 친구죠. 대학 시절 스포츠와 관련된 대외 활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대학 교수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서 경험을 쌓기도 했죠. 스포츠와 관련된 자원봉사,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을 겁니다. 저는 국내·외 관계없이 무조건 다 경험했거든요.

장애인 체육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시절부터 장애인 체육과 관련된 일을 하기도 했죠. 우리 대학(이화여자대학교)에 시각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체육 동아리가 있었거든요. 그 동아리 일을 많이 도왔습니다. 운동이나 행사도 함께했고요. 그때부터 장애인 체육에 흥미가 생겨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대학원 전공을 특수체육으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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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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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박주희 이사장이 체육계에 이름을 알린 건 2007년이었습니다. 박주희 이사장은 ‘한국 최초’ 국제도핑검사관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KADA 초창기 멤버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장애인 체육과 비장애인 체육을 두루 공부했어요. 장애인 체육에선 치료의 목적으로 약물을 활용하곤 합니다. 그런 부분을 공부하고 일을 시작한 것이 KADA 적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KADA에서 국제대회 경험을 쌓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국제대회 현장을 누비는 건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국제대회 현장을 누빈다는 건 항상 설레는 일입니다. 긴장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처음 국제 업무가 주어졌을 때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학창 시절부터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잘 해낼 것’이란 자신도 있었고요. ‘스포츠 도핑’이란 전문성을 가지고서 많은 국제대회, 국제회의 등에 참석했습니다. 여러 기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죠.

Q. 현장에서 터득한 것이 대단히 많을 듯합니다.

다른 국가, 문화, 종목 등에 관해서 알게 되는 것이 한둘 아니었죠. 지식, 인맥, 업무와 관련된 전문성 등이 대단히 많이 쌓였던 것 같아요. 저는 운이 좋기도 했습니다. 제가 체육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국제대회 유치가 대단히 많았어요. 2011년 대구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펼쳐졌죠. 2014년엔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등이 열렸습니다.

한국은 종목별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개최도 많이 했고요. 저는 대회를 치를 때마다 큰 성장을 일궜어요. 국제대회 담당자로서 여러 국가, 종목의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걸 배웠죠. 이후 ISF와 인연을 맺으면서 전문성의 깊이를 더해 나간 것 같아요.

Q.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 스포츠 행정가는 흔한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 스포츠 행정가는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고요.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걸으면서 롤모델이 있었습니까.

우리 학교에 국제스포츠계에 몸담고 계신 많은 분의 롤모델이 계십니다. 이화여대 홍양자 명예교수님이세요. 제가 교수님을 모셨을 당시엔 국제배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하시기도 했죠. 그 당시 한국 여성이 국제배구연맹 부회장을 맡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어요.

제겐 늘 큰 행운이 따르는데요. 홍양자 교수님이 국제배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하실 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분을 모시면서 석사 공부를 했어요. 스포츠 국제무대가 어떤 곳인지 아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죠. 지금도 국제대회나 회의 등에 참석하면 ‘나는 홍양자 교수님의 제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이 많아요.

항상 느끼는 건 국제무대에선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도 홍양자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잖아요. 홍양자 교수께서 국제무대에 남긴 인상이 아주 좋았기에 제가 큰 도움을 받고 있거든요. 국제무대에선 늘 ‘대한민국 국가대표’란 마음으로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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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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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박주희 이사장도 최근엔 국민대학교 특임교수로 임용이 됐잖아요. 본격적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쓸 것 같은데요. 국제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조언해 주는 것이 있습니까.

‘학생이 무기’란 거예요(웃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게 학생이잖아요. 학생들에게 항상 얘기해요. “네가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마라. 그게 스포츠든 무엇이든 일단 해라.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로부터 배우고 경험을 더하면 된다. 세상에 학생의 도전을 비난하거나 지탄하는 사람은 없다”고.

또 하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직접 해봤을 땐 다르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자원봉사든 단기 아르바이트든 관련된 일은 고민하지 말고 시도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현장으로 향하면 단순히 일만 경험해 보는 게 아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게 경험이고 자산이 되는 겁니다.

Q. 학생 때 그런 이야기를 해준 어른이 있었습니까.

학생일 땐 좋아하는 것만 수두룩했죠. 제가 명확하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늘 고민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고 경험하면서 터득해 나가는 건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실천하기 가장 쉬운 것부터 당장 해보라’고 조언하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을 검색해 보는 것이 실천의 시작이에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대한체육회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의 홈페이지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접속해서 어떤 행사가 있는지 찾아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에 도전해 보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ISF 이사장은 명예직이지 않습니까.

명예직이죠. 돈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닙니다(웃음). 제가 돈을 벌어와야 해요. 교수 일과를 병행하면서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여러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하면 된다’는 걸 터득하게 해주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주변 분들의 큰 도움을 받았듯이 이젠 제가 도움을 줘야 하는 위치에 서지 않았나 싶어요.

Q. 한국은 선수 출신 지도자, 행정가의 파워가 대단히 강하잖아요. 비선수출신으로서 행정가의 길을 걸어 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한국은 유독 선수 출신이냐 비선수 출신이냐를 나누긴 하죠. 선수 출신은 선수 출신만의 전문성이 있잖아요. 비선수출신은 선수 출신이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갈 때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아나가거든요. 비선수출신만이 가진 경력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큰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Q. 여성 스포츠 행정가로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얼마 전 이화여대 학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성차별을 주제로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화여대를 나왔잖아요. 대학교 때까진 성별로 차별받은 적이 없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요. 누군가 저를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했을 순 있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체육계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젠더, 성평등이란 단어들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어요. 한국이나 국외나 스포츠 행정, 심판 등의 분야에서 남성이 월등하게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국제적으로 ‘여성의 참여율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제가 스포츠 도핑이란 걸 초창기 멤버로 시작했을 때도 ‘여성’이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스포츠 도핑이란 걸 전문화해서 시작한다는 게 중요했던 거였지. 새롭게 시작하는 데 있어서 성별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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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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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후배들에게 강조해 주는 것도 있을 듯한데요.

후배들에게 “남녀 차별과 같은 건 네가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항상 명심하라”고 해요. 예를 들면 어느 한 조직에서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나는 여자니까 안 해’란 생각으로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행동이 성차별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여자가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옮기긴 어렵겠죠.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이 다르니까. 하지만, 물건을 옮길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핵심인 거죠.

Q. 도핑 검사관 자격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겁니까.

2007년부터 쭉 유지하고 있죠. 한 번 도핑 검사관이 됐다고 해서 평생 유지되는 건 아니에요. 계속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자격을 유지하려면 매년 몇 건 이상의 검사를 해야 하는 기준도 있거든요. 교육을 받고 시험도 봐야 하고요. 자격을 충족해야만 계속해서 도핑 검사관 자격을 유지할 수 있어요.

Q. 도핑 검사관이란 전문성을 인정받아서 국제스포츠 행정가로 나아가고 계십니다. 많은 국제대회를 경험했잖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대회가 있습니까.

2008년 국제 도핑 검사관으로 국제대회를 처음 경험했어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해변 아시안게임이었죠. 그때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서는 게 선수만이 아니란 걸 처음 느꼈어요.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땀 흘리는 분이 한둘 아니란 것도 알았죠. 처음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Q.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이 터진 대회였잖아요. 올림픽 역사의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보니 더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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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단순한 질문을 해볼게요. 도핑 전문가시잖아요. 금지약물을 쓰면 신체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향상되는 겁니까.

약물마다 달라요. 어떤 약물은 복용해도 생물학적 변화가 없습니다. 약물이 생물학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더해주기도 하거든요. 올림픽, 세계선수권과 같은 큰 대회를 앞두고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선수들이 금지 약물에 손을 대는 이유 중 하나죠.

외신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게 있는데요. 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0.001초의 기록을 앞당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금지약물 복용을 고민한 적이 많다’는 내용이었죠. 그 매체에 따르면 그런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인생을 건 대회잖아요. 단 한 번의 대회로 내 삶이 평가받는 거니까.

Q. 요즘엔 정보가 아주 많잖아요.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들이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매우 줄었죠. 과거엔 정보가 많이 없었습니다. 금지약물 복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부재했었죠. 세상이 달라졌잖아요. 요즘 엘리트 선수들은 자신들의 땀과 노력이 한 순간의 실수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잘 알아요. 금지약물은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금지약물’이란 게 자신의 이력에 들어가는 순간 평생을 체육계에 몸담을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죠. 그런데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Q. 다른 쪽이요?

생활 체육입니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정보가 방대한 시대잖아요. 예를 들면 생활 체육에서 ‘프로틴이나 다름없는 건데 몸이 좋아진다’고 소문난 약이 하나 있어요. 그 약의 성분이 무엇인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그 약을 접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거예요.

금지약물 성분이 감기약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엘리트 선수들은 약을 먹을 때 성분 조사란 걸 해요. 금지약물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생활체육에선 그 정도로 확인하진 않잖아요. 생활 체육 분야에선 금지약물 등에 관한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생활체육 분야에서 금지약물에 대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시스템을 정비하고 구축해 나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Q.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약 중입니다.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있습니까.

저는 대한민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다고 봐요. 한국은 수많은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국가입니다.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세계선수권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잖아요. 이런 나라 몇 안 됩니다. 한국은 국제대회를 유치할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어떤 식으로 대회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닙니다. 다른 선진국은 국제대회를 치르고 나면 국제 무대로 많이 진출하거든요. 선수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행정가, 심판 등이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겁니다. 한국은 그 수가 매우 적어요. 축구만 봐도 세계 무대는커녕 아시아축구연맹(AFC)에도 결정권자가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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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학에서 더 많은 후학을 양성할 거잖아요. 이런 부분이 하나의 목표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제가 처음 국제스포츠 무대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언어’가 가장 중요했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다양한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활용하는 친구가 아주 많아졌어요. 여기에 전문성이 더해지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좋은 위치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죠. 많은 후배가 더 이상 대한체육회나 대한축구협회만을 목표로 하지 않아요.

이젠 IOC나 FIFA에서 일하는 걸 꿈꿉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요. 스포츠 외교력이 앞으론 더 중요해질 겁니다. 한국은 이미 스포츠 강국이에요.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에서의 성과가 이를 증명하잖아요. 한국이 성적뿐 아니라 스포츠 외교에서도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Q. 스포츠 외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힘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미국이나 일본은 어떤 스포츠기구에서나 수많은 결정권자를 배출해 내고 있습니다. 결정권자가 국제스포츠기구에 속해 있다는 건 엄청난 힘이거든요. 결정권자가 속한 국가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그 국가를 배제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죠.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땐 국제 스포츠 무대에 확실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를 풀어갈 힘을 발휘할 수 있고요.

한국은 선수 육성에 있어서는 확실한 시스템을 갖춘 국가입니다. 이젠 스포츠 외교에서도 강국으로 나아가야 해요. 대한체육회나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도 스포츠 인재 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매년 국제무대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성실함’이란 최고의 장점이 있어요. 기회가 있으면 그 기회를 반드시 잡아내는 힘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후배들이 기회를 조금 더 쉽게 잡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Q. 12월 10일부터 15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에 다녀오셨잖아요. 1년에 국외에 있는 날이 한국에 있는 날보다 많은 것으로 압니다. 보통 국외엔 며칠이나 나가 계신 겁니까.

1년 중 절반은 국외에 있는 듯합니다. 후배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죠(웃음). 참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할 수 있다는 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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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통 국외에선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회의가 많아요. 코로나19 시기엔 줌 미팅이 많았지만, 코로나19 시국이 끝난 뒤엔 현장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죠. 회의에 참석하면 국제무대에서 활약 중인 각국의 스포츠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그게 제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큰 자산이죠. 일정이 빡빡할 땐 1박 3일로 다녀오기도 하거든요. 몸이 힘들긴 하지만 최대한 재밌게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하려고도 하고요.

Q. 국제 스포츠계가 코로나19로 바뀐 것이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분야가 생겨났습니다. 코로나19 전엔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예요. 그 가운데 하나가 e-스포츠입니다. 코로나19 전만 해도 게임을 ‘청소년 유해 콘텐츠’로 보곤 했잖아요. 2025년엔 IOC 주도로 e-스포츠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e-스포츠가 글로벌 스포츠로 도약한 거예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잖아요. 엄청난 변화죠.

국제 스포츠계에선 가상 현실에 대한 관심도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기 스포츠 종목이 세계 10~20대 젊은 세대에 맞춰서 크게 변화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루하고 재미없는 종목은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는 거죠. 누구든지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매력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서핑, 스케이트, 클라이밍, 브레이킹과 같은 종목을 올림픽에서 볼 것이라고 상상해 보신 적 있으세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선 1900년 이후 올림픽에서 자취를 감췄던 크리켓이 돌아옵니다. 속도감 있는 형태로 바뀌어서 돌아오는 거예요. 미식축구의 변형 종목인 플래그 풋볼, 북미 원주민 문화에서 기원한 라크로스, 수년간 정식 종목 채택 요청이 끊이질 않았던 스쿼시 등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Q. 이와 같은 종목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경기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플래그 풋볼을 예로 들어볼게요. 상대 팀의 깃발을 뺏는 방식의 경기예요. 격렬한 몸싸움이 없어도 전략과 전술만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죠. 미국에선 이미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가상 현실을 활용한 비대면 스포츠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 단체는 쇠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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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 사진=이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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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스포츠 리더입니다. 박주희 이사장의 꿈은 무엇입니까.

제 삶을 돌아보면 ‘명확한 꿈’을 갖고 걸어 나간 것 같진 않아요. 대신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라도 더 경험하기 위해 하나라도 더 찾아보는 습관을 들였고요. 저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하는 시간이 많잖아요. 늘 큰 책임감을 갖고 한국 체육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누군가는 많은 경험을 쌓고 있는 제게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글쎄요. 주어진 일에 온 힘을 다하다 보니 여러 기회가 오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 경험 하나하나가 아주 소중하기에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요. 무엇보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재밌고 행복하거든요. 제가 일을 계속하려면 주어진 일은 완벽하게 해내야 합니다. 하나를 주면 두 개 이상을 해내야 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겁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주희 이사장이 생각하는 ‘좋은 리더’란 어떤 리더입니까.

리더의 필수 요건으로 공정성, 윤리, 도덕 등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여러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핵심 요건은 ‘신뢰’라고 봐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아야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신뢰받지 못하는 리더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왜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따르질 않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윤리나 도덕을 체육계 리더에게 요구하는 건 한국만이 아닙니다. 리더의 도덕성은 신뢰받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세계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송파=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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