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시가 운영주체 맡으며 새 조례로 양측에 합의 요구
상인 “합의금 과도, 못 내면 쫓겨나”…임대인 “비싼 수준 아냐”
시, 미합의 땐 강제퇴거…시민단체 “조례 위법, 공익감사 청구”
지난 13일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의 한 상점에 영업종료를 앞두고 ‘점포 정리’ 등 할인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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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찾은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 신발·양말 가게나 반려동물 용품점, 네일아트, 건강식품점 등의 간판을 내건 점포 상당수가 비어 있었다. 점포 두세 곳 중 하나가 빈 구역도 있었다.
영업 중인 점포에도 ‘점포정리’ ‘전 품목 세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등이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가게에는 손님이 몰려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는 광경이 연출됐다.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 상인은 “임대인과 합의하지 못하고 가게를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인 상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에 나선 것”이라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으로 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반월당 지하상가 운영 주체가 최근 민간에서 공공으로 바뀌면서 과거 점포를 분양받은 임대인(수분양자)과 임차 상인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갈등을 중재하겠다며 대구시가 마련한 조례안은 오히려 양측 간 싸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영업 중인 상인 대부분은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용수익권을 넘겨받은 수분양자들과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전대(재임대)’ 형태다.
시가 직접 상가를 운영할 때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공유재산법)을 적용받는다. 이 경우 20년간 유지돼온 수의계약 형태의 계약이 불가능하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새 계약자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기존 상인들은 사실상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권리금을 주고 영업을 해온 상인의 불만이 특히 커졌다. 수분양자들도 권리금 등의 회수 없이 사용수익권을 잃게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논란 끝에 시는 지난해 12월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안’을 마련했다. 관련법에 따라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새 계약자를 선정하되, 향후 5년간 기존의 수의계약을 허용하는 것으로 유예하는 게 골자다.
박병현 상인 생존권 비상대책위원장은 “상인들은 권리금과 시설 보수 등에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입찰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됐고, 과도한 합의금을 내지 못하면 생업을 잃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19일 대구시의회 앞에서 조례 개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대구시 조례가 위법하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무상 사용·수익 허가 기간이 끝나 점포에 대한 권리가 소멸된 수분양자에게는 과한 특혜를 주고, 실제 영업해 온 상인 대다수는 지하상가에서 쫓겨나게 했다”고 밝혔다.
수분양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퇴직금이나 대출금 등으로 상가의 사용수익권을 매입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권리금 등이 비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연옥 메트로센터 수분양자협의회 부위원장은 “그동안 점포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매매분양을 허용하고,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시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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