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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아·태 중심 '경제 운동장' 넓히는 日… 韓도 합류하나 [종전 80년 광복 80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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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글로벌 '新무역질서' 주도
    IPEF·RCEP 등 다자 틀 외에
    CPTPP는 英까지 12개국 동참
    참여국간 단순한 시장개방 넘어
    전략산업 기술·인증 선점 나서
    배터리 등 테스트 표준 확보하면
    우리 기업들 R&D에도 직격탄
    국내서도 "가입 서둘러야" 확산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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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약화되는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포스트 WTO' 시대의 새로운 무역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 간의 통상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기존 다자무역 규범이 힘을 잃자, 일본은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 틀을 적극 활용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규범과 표준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의 전략은 단순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기술·표준·인증까지 포괄하는 '일본 중심'의 규칙을 확산시키는 데 있다. 한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CPTPP 가입 여부와 일본 주도의 규범체계에 편승할지, 아니면 독자적인 무역·산업 전략을 추진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다자 틀 장악한 일본

    일본은 2018년 미국이 탈퇴한 CPTPP를 11개국 협정으로 발효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CPTPP는 상품·서비스 무역 자유화뿐 아니라 전자상거래, 투자 규제, 지식재산권, 국가보조금 등 비관세 장벽까지 규율하는 '포괄형 협정'이다. 현재 CPTPP 가입국은 영국을 포함해 12개국이다. 중국과 대만, 인도네시아 등도 가입을 타진 중이다. 일본은 이를 21세기형 무역규범의 기준점으로 삼아 향후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IPEF에서는 미국, 호주, 인도 등과 함께 경제안보·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명분으로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 등 전략품목의 공급망 규범을 설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기술표준, 인증 절차, 데이터 이동 규칙 등을 패키지화해 일본식 모델을 참여국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도체 제조장비의 기술 사양, 배터리 소재의 품질 인증, 희토류 정제·재활용 공정의 환경 기준 등에 일본 산업 규격(JIS)을 반영해 역내 규범의 사실상 설계자가 되는 셈이다.

    또 RCEP에서는 중국·아세안을 포함한 15개국과 함께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을 출범시켰다. 일본은 특히 원산지 규정과 통관절차 간소화에서 자국 산업의 공급망 연계를 유리하게 만드는 표준을 관철했다. CPTPP가 고도의 규범·시장 개방을, RCEP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IPEF가 전략산업 공급망 규칙을 담당하게 하면서 일본은 3가지 틀을 서로 보완하는 다층 구조를 완성해가고 있다.

    일본의 무역 전략 핵심은 단순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전략품목 규범화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같은 핵심광물 등을 활용한 첨단기술을 경제안보 범주에 포함시켜 기술 사양·표준·인증 절차를 하나의 세트로 묶는다. 이를 통해 기술 공급망 전체를 일본 규격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를 채택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일본의 국제표준 경쟁력이 강화되는 구조다.

    이러한 표준화 전략은 일본의 산업 기반과 직결된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 배터리 전구체, 희토류 자석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자국 규격이 채택되면 자연스럽게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일본식 배터리 안전성 테스트 규격이 역내 표준으로 확정되면 해당 인증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국·중국 기업은 진입장벽을 높게 느낄 수밖에 없다.

    ■CPTPP 저울질, 한국의 선택은

    한국은 아직 CPTPP에 가입하지 않았다. 농업·수산업 개방에 따른 국내 반발, 일본과의 통상마찰 가능성 등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CPTPP가 향후 아시아태평양 무역의 기본 규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이 일본 주도의 표준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특히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에서 일본 규격이 확산되면 우리 기업의 후속 투자·연구개발(R&D) 방향도 영향을 받게 된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는 "CPTPP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정한 규칙이 사실상 아시아태평양 표준이 되면 한국 기업도 수출을 위해 따라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 경우 한국이 규범 설계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미국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무역구조가 미래산업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만큼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고 있다.

    정성훈 KDI 선임연구원은 "CPTPP는 미중을 제외한 12개 회원국 간 높은 수준의 개방을 표방하고 있어 미중 무역의존도 완화와 공급망 안정화에 효과적"이라며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지식재산, 환경, 노동을 아우르는 '골드 스탠더드'급 협정으로 평가되는 만큼 향후 한국의 무역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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