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엔 한중러 정상, '망루'서 나란히 전승절 열병식 지켜봐
내달 열병식 계기로 북중러 vs 한미일 구도 심화 가능성
김정은·시진핑·푸틴 |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음 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김 위원장이 톈안먼 망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옆자리에 설지 관심이 쏠린다.
'망루 외교'로 불릴 정도로 중국이 열병식 자리 배치에 신경을 쓰는 가운데,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설 경우 한미일에 맞선 북중러 관계 강화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장이 될 수 있다.
10년 전 승전 70주년 열병식 때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한중간 '밀월' 관계라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이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 관계가 급랭한 바 있다.
시진핑-푸틴과 나란히 선 박근혜 전 대통령 |
◇ 10년 전엔 한중러 정상 나란히…北 최룡해는 가장자리
앞서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 당시 한국 정상 가운데 최초로 톈안먼 망루에 올라 중국의 열병식을 지켜본 바 있다.
당시 모인 외국 정상 수십명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다음 자리에 앉았다. 박 대통령 오른쪽으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섰고, 미국·일본을 비롯한 미국 우방 정상은 참석하지 않았다.
톈안먼 성루 위에서 열병식 지켜보는 北최룡해 |
북한 측 대표로 참석했지만 국가 정상이 아니었던 최룡해 당비서는 톈안먼 성루 앞줄의 오른쪽 끝 편에 자리했고, 시 주석과의 단독 면담도 없었다. 이를 두고 달라진 북중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2016년 한국이 미군 사드를 배치한 후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비롯한 유무형의 보복 조치를 하면서 한중 관계는 냉각됐다.
중국의 열병식 예행 연습 |
◇ 김정은, 다자 무대 첫 등장…'한국전쟁 직후' 김일성도 열병식 참석
훙레이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외국 국가 원수 및 정부 수뇌 26명이 기념행사에 참석한다"며 김 위원장 등 참석자 명단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북러 관계 밀착에도 불구하고 5월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에 불참한 바 있으며, 그동안 양자 외교를 고집해온 김 위원장이 사실상의 다자 외교 무대에 서는 것도 처음이다.
참석 전망이 나왔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불참하는 만큼 김 위원장도 박 전 대통령과 비슷한 의전을 받을 가능성이 거론되며,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시 주석의 양쪽에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게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봤다.
행사에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베트남·라오스·몽골·파키스탄·카자흐스탄·이란 등의 정상이 참석한다.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오른쪽 둘째)과 마오쩌둥(오른쪽)[연합뉴스자료사진] |
북중 관계는 2019년 시 주석이 중국 국가 주석으로는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면서 개선되는 듯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북러 밀착 속에 북중 관계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북중은 수교 75주년이던 지난해를 '조중 친선의 해'로 지정했지만, 북한에 대한 지원 규모를 둘러싼 양측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소원한 분위기가 연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달 주북 중국대사관의 전승 기념행사에 고위급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하고, 과거 일본에 대항해 함께 싸운 우의에 대한 발언이 나오는 등 최근 변화 기류가 감지됐다.
김 위원장이 톈안먼 망루에 서게 될 경우 이는 할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에 이은 것이다.
김 전 주석은 한국전쟁(1950∼1953년) 직후인 1954년 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 당시 톈안먼 망루에 올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본 바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부른다.
최근 한국이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상황에서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서게 될 경우 동북아에서 북중러와 한미일 간 대립 구도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김 위원장의 열병식 참석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도 이런 일들의 영향을 기본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중국 건국 70주년 장쩌민·후진타오와 함께 선 시진핑 |
한편, 2019년 있었던 중국의 신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 당시 톈안먼 망루에는 시 주석의 좌우로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 주석이 함께 선 바 있다.
당시 생존 중이던 전직 국가 주석들이 모두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미중 갈등 및 홍콩 시위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의 권력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전승절이 아닌 건국 기념일이라 해외 국가원수는 당시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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