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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0% 성장 막으려 사상 초유의 재정 투입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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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기획위 이끈 이한주 인터뷰

    조선일보

    최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을 마친 이한주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민주연구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재명 정부 말년쯤 되면 0%대 성장률이 고정될 것”이라며 “성장을 위해서라도 역사상 본 적 없는 산업 지원책을 쓰겠다”고 했다./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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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을 마친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정부, 여당이 추진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후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정부가 기업에 대한 수백조 원의 투자를 기획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실용주의자”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대통령실과 인수위 역할을 한 국정위 간 갈등설에 대해선 “이미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다 보니 대통령실과 ‘접촉 사고’ 위험성이 있었다”며 “이 대통령도 대체로 국정위 안에 동의했지만 각 정책에 들어갈 돈(예산) 문제에 압박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국정위원장을 하면서 무엇을 가장 고민했나.

    “우리는 전무후무한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률 감속을 겪고 있기도 하다. 고속 성장 뒤 4~5% ‘중속 성장’ 기간이 어느 정도 길었어야 하는데, 이 기간이 너무 짧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재명 정부 말년쯤 되면 0%대 성장률이 고정될 거라고 본다. 그러면 사람들이 투자도 안 하고, 소비도 안 하면서 마이너스로 간다.”

    -이재명 정부는 어떤 복안이 있나.

    “역사상 본 적 없는 산업 지원책을 쓸 거다. 가령 AI의 경우, 재정도 쓰고 국민 펀드 100조원도 동원할 계획이다. 매년 40조원의 벤처 투자 펀드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민관 공동 펀드 등을 활용해 첨단 산업에만 수백조 원을 쓸 예정이다.”

    -기업 지원한다면서 노란봉투법을 추진하는 건 모순 아닌가.

    “기업들 지원하는 돈은 따져보면 결국 근로자들 월급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기업을 지원하면서도 산업재해를 줄이고, 노란봉투법도 하는 것이다. 아령을 한쪽 팔로만 들면 척추가 휜다. 양쪽 팔로 들어야 균형이 잡힌다. 노동계 쪽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돈이란 돈은 기업에 다 퍼준다’고 한다.”

    -민생회복지원금도 푸는데, 재원이 있겠나.

    “올 7월 소비자심리지수(CSI)가 최근 4년 중 최고치(110.8)를 기록했다. 지원금이 소비 심리 살리는 데 분명 영향을 줬다. 할 수만 있으면 여러 번 했으면 좋겠다. 소득을 지원하는 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임시적 측면이 강한 정책이다. 결국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면 지원금의 효과도 없다. 이 대통령은 ‘이 방법 아니면 안 돼’ 하는 식의 고집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국정위가 만든 ‘5년 청사진’에 대해 이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

    “인수위는 앞에서 끌고 가는 기관차지만, 국정위는 대통령실 옆에 붙어 같이 끌고 간다는 차이가 있다. 차가 옆에서 붙어가면 접촉 사고가 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대통령도 국정위 내용을 다 꼼꼼히 챙길 시간이 안 됐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공약들을 대통령이 다 기억할 거라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다만 몇 번 이 대통령과 대화를 해보니 국정위 계획 대부분을 아시긴 했다. 대체로 동의를 하시는 것 같더라.”

    -국정위가 처음에는 세부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뭔가.

    “(대통령실에서) 세부 계획을 빼라고 한 것은 아니다. 자료를 냈다 폐기한 것도 아니다. 다만 국정위 세부 계획은 대통령의 공약을 정리한 것이고, 이건 반드시 돈 문제가 따라붙는다. 이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신 것 같긴 하다. 처음에 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추가 재정 소요를 따져보니 5년간 680조원이 들더라. 이걸 줄이고 줄여서 210조원까지 줄였다.”

    -정부조직개편안 등도 발표하지 않았는데.

    “이미 정부가 출범한 상태다. 고려할 게 너무 많다. 가령 기후에너지부 신설 같은 경우만 해도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까지 걸리더라. 당면한 국정 현안이 많기도 해서 조직 개편을 할 여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 대통령의 지금까지 국정 운영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번 한미, 한일 정상회담은 잘했다. ‘과거처럼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할 수 없다’는 말을 두고 진보 진영은 비판한다. 그러나 파도가 세면 몸을 추슬러야 한다. 일본에 과거사 언급을 안 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동북아 지형에서 운전자가 될 수는 없다. 중국, 일본을 차에 태워 갈 국력은 되지 않는다. 우리와 일본은 글로벌 밸류체인상 밀접하게 연관돼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괜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가지고 공격하면 피차 피곤할 뿐이다.”

    -실용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보는 건가.

    “이재명은 뼛속까지 실용주의자다.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6·27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줄였다. 분명히 상승세가 둔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났다. 청년들 눈에는 ‘집값 올라서 윗세대만 부자가 됐다’는 박탈감이 있다. 그런데 갭투자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면 청년들에 한해서는 주담대 6억원 규제 등을 좀 풀어줘야 한다.”

    ☞이한주는 누구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복고,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성남의 한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40년 간 인연을 이어왔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캠프 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엔 민주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지난 대선에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인수위 역할을 한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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