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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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전시장에 놓인 만화 캐릭터의 그림과 조각 형상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 캐릭터들마다 기쁨과 슬픔, 분노가 담긴 무언의 메시지가 있어서인지 계속 되돌아보게 했다. 클로즈업된 그들은 말은 못했지만 진심이 서려 있는 듯했다.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 같은 얼굴을 강조한 작품을 선보여왔던 옥승철 작가의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이 서울 잠실에서 열린다.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롯데뮤지엄은 다음달 26일까지 옥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신작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그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대형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와 조각·설치로 확장된 작업 80여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베이전이다. 전시명 '프로토타입'은 본래 대량 생산 전 단계의 시제품을 뜻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를 하나의 고정된 원형이 아닌, 계속해서 호출·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 데이터베이스로 해석한다.
미술시장에서 익숙한 그의 도상이지만, 이번 새롭게 선보인 대형 흉상과 굵은 벡터 라인의 얼굴들은 대중성과 자본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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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초록 조명의 '십자 복도'가 시야를 가른다. 벽과 바닥을 물들인 크로마키 초록 조명은 마치 영화의 로딩 화면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세 개의 섹션인 '프로토타입-1, 2, 3' 중 어느 쪽부터 탐험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경로는 직선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원, 반복되는 순환 구조다.
특히 '프로토타입-1' 섹션에서는 높이 2.8m의 대형 조각 '프로토타입'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울과 조명이 둘러싼 이 조각은 '기본값'이자 전시의 좌표 원점처럼 느껴진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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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증명사진을 모티프로 인물의 정체성을 변주한 'ID 픽처(Picture)', 거울을 이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시각화한 '아웃라인(Outline)'이 이어지고, 흉상에서 석고상, 평면 회화로 이어지는 '캐논(Canon)' 시리즈가 '원본'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특히 실존 인물 '줄리앙'의 흉상에서 출발해 대리석, 석고상, 회화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변형 흐름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의 이미지 소비 구조와 겹쳐지며 '원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프로토타입-2' 섹션에서는 헬멧과 고글을 쓴 인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지만, 그 긴박함은 회화의 평면성 속에 갇혀 비활성화된 장면이 된다. '헬멧(Helmet)'과 '플레이어(Player)'시리즈가 전하는 묘한 정적이다. 여기에 '미믹(Mimic)' 시리즈가 더해져, 주변을 모방하며 정체성이 흐려지는 자아를 은유한다.
옥승철 'Mimic'. 롯데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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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타입-3' 섹션은 반복을 통해 감각이 무뎌지고, 익숙함이 오히려 불편함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약물의 내성처럼 반복되는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감각을 은유한 회화 신작 '타이레놀(Tylenol)',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녹차처럼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주목한 '테이스트 오브 그린티(Taste of Green Tea)', 하나의 상징이 서로 다르게 인식되는 상황을 다룬 '언더 더 세임 문(Under the same moon)' 등은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는 감각이 실은 나열된 습관의 호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같은 얼굴을 가지고 헤어 스타일만 바꿔가며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바꾸거나 표정이나 시선에 따라 감정의 차이를 나타내는 등 끊임없이 변주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 '트로피(Trophy)'는 첫 번째 섹션의 대형 조각 '프로토타입'과 연결되며, 전체 전시를 수미상관 구조로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옥승철 'Canon'. 롯데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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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프로토타입'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직면한 실존적 고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철학적 실험이다. 원본과 복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옥 작가는 "예술이 지닌 본질적 가치들이 디지털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며 "관객이 복제와 유통의 경험을 체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독창성, 진정성, 몰입 등 예술을 구성해온 본질적 가치들이 디지털 이미지의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관람객들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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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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