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윌리엄 달림풀 신간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
인도 콜카타 빅토리아 기념관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영국은 1858년부터 1947년까지 89년간 인도를 식민 통치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배는 1757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군대가 당시 무굴제국 아래 있던 벵골을 점령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후 1765년 무굴 황제 샤 알람은 동인도회사에 벵골 지역 세금 징수와 통치 권한을 넘겨준다.
영국 역사학자 윌리엄 달림플의 신간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생각의힘)은 이처럼 무굴이라는 대제국을 무너뜨리고 영국보다 먼저 제국이 된 동인도회사의 탄생과 몰락을 보여준다.
작가는 런던 영국도서관 문서고와 뉴델리 인도 국립문서고에 보관된 수만 장에 달하는 동인도회사의 방대한 기록과 무굴 제국의 역사가·귀족·서기들이 남긴 페르시아어 역사서 등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이 책은 동인도회사의 전사나 경영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런던의 사무실에 본사를 둔 기업이 어떻게 강대한 무굴 제국을 대체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18세기 무굴제국은 오늘날의 인도 대부분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통치하던 나라였다. 인구는 1억명으로 당시 오스만 제국보다 5배 많았고, 무굴제국에서 생산되는 제조품은 전 세계 생산량의 4분의 1가량이었다. 당시 무굴을 견줄 만한 나라는 명나라뿐이었다.
1599년 런던의 부유한 상인들이 동방과 무역을 하기 위해 자금을 모아 설립한 동인도회사가 훗날 이런 대국을 무너뜨렸다. 설립 이듬해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회사에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에서 절대적 무역 독점권과 함께 영토를 통치하고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렇게 시작한 동인도회사는 무굴제국과 협정을 통해 일반적인 무역을 행했다. 하지만 무굴제국이 내부 권력 다툼으로 점차 힘을 잃어가자 동인도회사는 단순 무역회사가 아닌 군사 세력으로 변모한다.
동인도회사는 대포와 함선을 갖추고, 인도 현지에서 용병(세포이)을 고용했다. 이어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하며 동부 벵골을 장악해 본격적인 인도 침탈에 나섰다. 1803년 동인도회사 소유 병력은 거의 20만명에 달했고, 회사의 영토는 무굴의 수도 델리에까지 이른다. 또 인도 거의 전역이 런던에 있는 동인도회사 이사회실에서 통치되는 상황이 된다.
책 표지 이미지 |
문제는 한 나라를 다스리게 된 이 기업의 첫 번째 존재 목적이 주주 이익 극대화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770년 벵골 인구 3분의 1을 앗아간 대기근이다. 당시 벵골은 무굴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1768년부터 가뭄이 이어졌고 1770년에는 쌀 수확량의 70%가량 줄었다.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와중에도 동인도회사는 세금을 유지하고, 일부는 오히려 올리기도 했다.
작가는 "다른 식민 지배 국가들과 달리 통치를 위한 최소한의 규범도 없었던 것"이라며 "동인도회사의 인도 정복은 세계사 최악의 기업 폭력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런 동인도회사를 바라보며 영국 본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 의회는 1773년 벵골에 총독직을 신설했으며 1784년에는 인도법을 통과시켜 인도 문제와 동인도회사를 규제하는 관리위원회도 설립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움직임은 요식행위였으며 사실상 동인도회사와 영국 의회는 공생 관계였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영국 의회 내 의원 중 거의 4분의 1이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벵골의 대기근으로 동인도회사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1772년 영란은행은 동인도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대출해줬다. 작가는 "동인도회사는 정말이지 너무 커서 망할 수가 없는 회사였다"며 "역사상 최초의 구제 금융으로 살아났다"고 설명한다.
이런 동인도회사의 역사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인도회사의 사례가 기업 권력의 오남용 가능성, 주주들의 이익이 국익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음험한 수단에 관한 경고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많은 기업이 국가 권력을 왜곡시키는 데 성공한 동인도회사를 따르려 시도한다며 "21세기에도 막강한 기업 하나가 18세기 동인도회사가 그랬던 것만큼 아주 효과적으로 한 나라를 압도하거나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파일 옮김. 656쪽.
인도 타지마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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