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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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잠정적 응급 조치”로서 북·미 간 ‘북핵 동결’ 합의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공개된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이 버티는 가운데 초기 동결 단계에서 제재 완화를 보상으로 내준 뒤 협상이 멈춰버리면 북한이 핵 보유를 이어가고 비핵화는 달성하지 못하는 ‘위험한 교집합’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한 최종 목표(비핵화)를 위해 성과 없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그 목표를 이뤄낼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미래의 비핵화 약속은 하지 않는 합의를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느냐’는 질의에 “일단 일종의 잠정적 응급조치로서 핵 개발, 미사일 개발 등을 현 상태에서 멈추는 것 자체도 사실은 군사 안보적인 평화라는 측면에서 유익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답변했다.
김정은 “트럼프와 좋은 추억 있다” 언급도
김정은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이재명 정부’를 실명 거론하며 “현 집권자의 이른바 ‘중단-축소-비핵화’라는 ‘3단계 비핵화론’ 역시 우리의 무장 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 등이 이날 보도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최종 상태(end state)’를 비핵화로 설정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표면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3단계 비핵화 접근법을 김정은이 정면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은 하지 않겠다며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한국이 작은 결실이라도 보겠다며 협상을 시작하는 데만 중점을 둔다면 이는 김정은이 의도하는 ‘북핵 용인’으로 수렴할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결-제재 완화-비핵화 협상 중단-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 승인’ 가능성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선의와 달리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면 한국으로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번 연설에서 대미 메시지도 발신했다. 핵 무력을 뜻하는 ‘전쟁 억제력’을 설명하며 “억제력의 제1 사명이 상실될 때는 억제력의 제2의 사명이 가동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동되면 한국과 주변 지역 그의 동맹국들의 군사조직 및 하부구조는 삽시에 붕괴될 것이며 이는 곧 괴멸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정은은 2022년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제2의 사명’에 대해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말해 곧 핵 선제공격 등 핵 사용이란 걸 암시했다. 그가 ‘한국과 주변 지역 동맹국들의 군사조직’을 언급한 건 한반도를 넘어 주일 미군 등 유사시 증원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군도 핵 공격의 대상이라는 걸 처음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직접 트럼프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일각에선 시기상 트럼프의 참석이 예정된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에 맞춰 북한이 미국과의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비핵화는 논하지 않겠다며 “평화 공존”의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것으로, 실제 협상 가능성을 줄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 다소 느슨한 인식을 갖고 있는 트럼프를 공략,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 군축 대화를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정은은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며 지난해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결국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다.
대통령 “미 요구 수용하면 외환위기 위험”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해 “안전장치 없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못지않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는 지난 7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데 잠정 합의했으나,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8월 말 기준 4163억 달러인데,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집행한다면 전체의 84%가 빠져나간다.
이 대통령은 뉴욕 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이날 출국했다. 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열리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정영교·이유정·윤성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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