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박찬욱·이병헌 인터뷰
“원래는 블랙코미디 의도하지 않았다”
“오스카 엄청난 영광…기대하고 있다”
[CJ ENM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관객들만큼이나, 제작진과 배우들도 오래 기다려온 순간이다. 베네치아와 토론토, 그리고 부산까지. 개봉 전부터 국내외 영화제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기분은 또 새롭고 특별하다.
“개봉 전에 이미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았잖아요.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감정이 새로워진 느낌이에요. 즐거운 기다림이었달까요. 관객들이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와 감정들을 고스란히 찾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요.”(이병헌)
24일 ‘어쩔수가없다’의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 감독과 주인공 ‘만수’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각각 만났다. “이병헌을 만나기 위해 제작이 오래 걸렸다”는 박찬욱 감독과 “늘 박 감독님과의 작업을 원했다”는 이병헌. 감독과 배우 간의 강한 신뢰, 그리고 영화와 연기에 대한 두 영화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BH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 ‘액스(The Axe)’를 원작으로한 ’어쩔수가없다’는 박 감독의 손에서 20년의 세월 동안 묵혀 있다가 세상에 나왔다. 박 감독은 “작품 하나를 끝내면 ‘도끼’를 만지고, 다른 작품이 끝나면 또다시 만지면서 그렇게 십몇년을 보냈다”면서 “로케이션 섭외부터 영화 전체를 다 했다고 보면 된다. 오래 걸렸으니 충분히 고통스러웠다”고 웃었다.
박 감독은 그렇게 ‘가장 만들고 싶었던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병헌을 택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 ‘쓰리, 몬스터’에 이어 세 번째다. 박 감독은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눈만 봐도 설득이 되는 배우다. 어느 배우보다 호소력이 짙다”면서 “관객들이 어느 순간 만수를 응원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하려면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다”고 했다.
이병헌은 박 감독과의 작업이 ‘운명’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늘 작품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해주셨는데, 만날 듯 만나지 못했다”면서 “15년 전쯤 미국 원작으로 작품을 만드신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그 작품을 함께 하게 된 것은) 운명이지 않나 싶었다”고 밝혔다.
[CJ ENM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화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만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만수는 어느 날 갑자기 다니던 제지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어려운 재취업 과정을 겪으며 결국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원작에서는 만수의 도덕적 타락이 초반부터 전개되지만, 박 감독은 그 전까지의 여정을 그리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관객들이 만수의 처지에 감정 이입을 하기 바랐던 감독의 의도다.
박 감독은 “처음에 행복한 상태로 시작하고, 실업자로 전락하고, 이후 고통을 받다가 무언가를 결심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만수를 관객들이 관찰하며 차분히 따라가면서 공감하기를 바랐다”면서 “이렇게 감정을 투자한 인물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계속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돌봐주고 싶은 그러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블랙코미디다. 박 감독 특유의 언어유희와 풍자 속에서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구르면서도 웃기고, 말로도 웃긴다. 범모의 집 음악감상실에서 벌어지는 ‘고추잠자리’ 신과 만수, 미리의 부부싸움 신 등이 대표적이다. 박 감독은 “원래는 블랙코미디로 만들 계획은 없었다”면서 제작 뒷이야기를 전했다.
[CJ ENM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 감독은 “원작을 읽을 때 좀 더 웃기게 할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이 작품이 꼭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면서 “이병헌도 대본을 보고 내게 가장 먼저 한 말이 ‘웃겨도 되나’였는데, 내가 ‘정확하게 읽었다. 웃길수록 좋다’도 이야기해 줬다”고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웃음은 어설픈 만수에게서 나온다. 쉬지 않고 넘어지고 구르며 재취업을 향한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는 만수의 몸부림은 애처로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든다. 이병헌은 “만수는 정말 처절하고,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 몸부림을 바깥에서 보면 때에 따라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내가 코미디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 그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최대한 만수가 가지고 있던 절박한 감정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직을 당한 가장 만수와 실제 이병헌과의 접점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병헌은 늘 일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배우의 세계도 실직이라는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영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렇다. 인공지능(AI)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는 제지업계와 스트리밍 산업의 부상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영화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도 비슷하다.
[CJ ENM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병헌은 “다음 작품이 보장되지 않는 배우들도 많고, 그것이 몇 년간 이어지면 실제 실직이 되는 경우도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많이 들었다”면서 “거기에 종이가 할 일을 잃고 만수가 직업이 잃는 것처럼, 극장과 배우가 그런 상황이다. 사양산업의 측면에서 제지와 극장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병헌의 말처럼 극 중 저무는 제지산업은 ‘위기’란 단어와 세트처럼 여겨지는 극장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만수와 범모, 시조 등 그의 잠재적 경쟁자들은 그런 제지업을 자신들의 천직이라 여기며 업과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12번째 영화를 막 세상에 내놓은 감독 역시도 느끼는 바가 크다.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살고 싶다”는 건 박 감독의 바람이자 깨달음이다.
박 감독은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 만수랑 범모를 보면서 나도 그런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면서 “영화를 못 만들면 죽은 목숨이 되거나 그러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구성되기에 나 역시 (영화인으로서의) 비중을 조금씩 줄여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BH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베네치아와 토론토, 그리고 부산에 이어 이제는 미국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영화진흥위원회 선정 내년 3월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 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섣불리 수상을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어쩔수가없다’에 대해 거는 영화팬들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 감독도, 배우도 수상에 대한 기대가 드는 것은 ‘어쩔수가없다’.
이병헌은 “오스카 후보작으로 선정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엄청난 영광일 것 같다. 저 또한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제 인생에 어마어마한 기회이니, (후보가) 된다면 열심히 홍보 레이스를 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