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영국은 어떤 존재일까. 과거 위용을 떨치던 나라지만 현재 경제적으로는 미국, 중국 등에 비해 밀리는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있다. 또는 음악, 스포츠 등 문화 측면에서 선도하는 국가로도 볼 수 있다. 인류 최고의 음악 밴드라고 불리는 비틀스나 우리가 즐겨 보는 축구 리그, 프리미어리그 모두 영국의 것이다. 조금 유쾌하게 다가가자면 맛있는 음식이 없는 나라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중국, 일본이나 접점이 많은 미국에 비해 영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방송인 피터 빈트는 저서 '지극히 사적인 영국'을 통해 우리가 잘 모르는 영국을 알려준다. 빈트는 매너가 영국을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매너는 귀족처럼 값비싼 옷을 입거나 우아하게 차 마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공동체 안에서 튀지 않고 인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이다. 빈트는 이를 '사회생활의 기본기'라고 설명했다.
빈트는 영국인을 지배하는 정서는 '침착하게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이라고 한다. 이같은 정서와 매너의 배경에는 제국주의 시기와 전쟁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은 제국을 건설했지만 노동자 계층은 계속해서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상황이 좋아질 만하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제국이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국력을 쏟아야 했고 희생되는 건 노동자 계층이었다. 영국인 남녀노소 찬란한 과거를 경험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가난한 영국인은 항상 인내하면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이 책에서 재밌는 지점은 저자가 영국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영국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영국을 찍으면 대충 맞다'는 말을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들어봤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절 때 영국이 식민지를 착취한 사례를 몰랐던 셈이다. 예를 들면 19세기 중반 청나라에서 발생한 '아편 전쟁'이 있다. 빈트는 영국이 무역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식민 지배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육하지 않는 대신 거대한 영토를 가졌던 역사를 중심으로 배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영국의 여러 결정에 이해가 간다. 과거 제국이었던 영국의 기억이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 예로 2016년 6월 영국이 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Brexit)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인 사이에서는 '영국 예외주의'라는 정서가 흐른다고 한다. 영국은 유럽과 달리 특별한 나라라는 의미다. 너무 강한 자부심이 브렉시트로 이어졌고 경제적 손실, 고립주의 등 부작용이 뒤따라왔다.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을까. K-푸드, K-문화, K-팝 등 화려한 수식어구 뒤에는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47.2%, 지난해 12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 20%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영국의 속사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지극히 사적인 영국 | 피터 빈트 지음 | 틈새책방 | 392쪽 | 2만원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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