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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와 러시아 틈 ‘몸값’ 높인 소국 몰도바…선택은 EU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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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벌이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인구 240만명의 몰도바 국민은 EU 편을 택했다. EU와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관심을 모은 28일(현지 시각) 몰도바 총선이 친EU 성향 정당의 승리로 끝나면서다.

    중앙일보

    28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너우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발언하는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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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개표율 99% 시점 기준 마이아 신두 현 대통령이 이끄는 친EU 성향의 행동연대당(PAS)이 49.99%를 득표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어 친러시아 성향 애국선거연합(PEB)은 24.28%, 중도 대안당(Alternative)은 8.0%, 좌파 우리당(OP)은 6.2%를 기록하고 있다.

    BBC는 PAS가 101석 중 54석을 차지해 단독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봤다. 이는 61석을 확보한 2021년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예상을 웃도는 승리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옛 소련의 구성원이던 몰도바에선 여전히 친러시아 세력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PEB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이달 초 한 여론조사에선 PEB가 PAS를 앞섰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인구 240만명에 불과한 소국인 몰도바는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지정학적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지역을 차지한 뒤 몰도바 동부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이어지는 육로를 확보하려는 구상을 계획 중이다. 몰도바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등 러시아 세력권이다.

    러시아로선 오데사와 이 지역을 아우르는 ‘회랑’을 확보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흑해 보급선을 차단하고 루마니아 등 EU의 동부 전선을 압박하는 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몰도바의 주요 정치세력을 우군으로 삼는 작업도 병행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EU 입장에서도 몰도바의 가치가 재조명됐다.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자원·에너지 등 물류 흐름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차질을 빚자 몰도바는 우회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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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너우 도심에서 행진에 참여한 PAS 지지자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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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러 러시아의 서진 구상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몰도바 내 친러시아 세력의 득세는 막아야 할 필요가 커졌다. 독일·프랑스·폴란드 정상이 지난달 몰도바를 찾아 옛 소련에서 독립한 기념일을 축하하고 PAS의 선거 운동을 도운 이유다.

    EU와 러시아 같은 외세의 이해관계까지 겹친 몰도바 총선은 혼탁 양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BBC는 “투표소에 폭탄 테러 협박이 있었다”며 “배후에 러시아가 지원하는 범죄집단이 있다는 게 몰도바 여당의 주장”이라고 보도했다. 몰도바 경찰은 러시아가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매표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고, 세르비아에서 총기 교육을 받은 일당이 소요를 꾸미려 한 혐의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반대로 유럽 국가가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나왔다.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선거 당일 “프랑스 정보기관이 내 재판을 유리하게 도와주는 대가로, 일부 몰도바 인사의 계정을 검열하라고 중간 연락책을 통해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몰도바 국민이 EU 노선을 택한 건 현재 몰도바가 겪는 혼란이 우크라이나 침공 등 러시아에서 비롯됐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면서 몰도바와 유럽을 위협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몰도바를 EU 가입 후보국 지위로 올려놓은 신두 대통령은 2030년까지 EU에 가입한다는 입장을 내세워 국민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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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몰도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시위 중 발언하는 야권 지도자 이고르 도돈.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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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이후에도 이 같은 갈등의 여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BBC는 “야권 지도자 중 한 명인 이고르 도돈은 개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승리를 주장하며 의사당 밖에서 시위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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