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사탄탱고',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 1위 직행
출판사 1곳서 6권 모두 출판…안지미 대표 "영화 보고 책 낼 결심"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최주성 기자 = 지난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국이 들썩였다.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은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고,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품귀현상이 발생하면서 지역 서점은 초반에 책 공급조차 받지 못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한강의 작품들이 줄 세우는 일이 수상 직후부터 연말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어떨까.
지난 9일 발표된 올해 노벨문학상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세계적 지명도는 높지만, 국내에서 그리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국내에 번역된 건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6권에 불과하다. 모두 출판사 1곳(알마 출판사)에서만 나왔다.
소위 말하는 인기 작가가 아닌 데다가 레퍼토리도 다양하지 않다 보니 작년만큼 선풍적인 반향이 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출판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래도 일단 출발은 좋다.
작년 베스트셀러를 줄세운 한강의 작품들 |
◇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 장악…서점가 노벨상 홍보 '시동'
온라인이 주력인 예스24에 따르면 9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12시간 만에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대표작 '사탄탱고' 판매량이 올해 연간 판매량의 약 12배를 기록했다.
또한 수상 직후부터 실시간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 '저항의 멜랑콜리'와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도 소설·시·희곡 분야 실시간 베스트셀러 3위와 5위에 각각 랭크됐다.
같은 기간 크러스너호르커이 저서의 전체 판매량 또한 올해 연간 판매량의 약 3배에 달했다. 전자책(eBook) 기준으로는 판매량이 무려 20배 증가했다.
[알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교보문고 상황도 비슷하다.
10일 교보문고 실시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가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또 다른 소설 '세계는 계속된다'는 12위에 올랐으며 '서왕모의 강림'(13위), '라스트 울프'(14위)가 그 뒤를 따랐다. 국내 번역된 책 대부분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9일 오후 8시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부터 10일 오전 10시 30분까지 온라인에서만 1천800부가 판매됐다. 사탄탱고(1천300부)와 '저항의 멜랑콜리'(300부)가 주로 팔렸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노벨상 특수는 늘 있었지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판매량이 생각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
교보문고는 이날 오전 광화문점에 노벨문학상 매대를 꾸렸다. 수량이 부족해 출판사로부터 50여권을 퀵으로 받아 진열했다고 한다.
김 담당은 "광화문점에도 사탄탱고가 4권, 그 밖의 작품도 그 수가 많지 않았다"며 "출판사로부터 급히 공급받아 책을 진열했다"고 설명했다.
알라딘도 교보문고와 비슷한 판매 추이를 보였다. 노벨문학상 이전 한 달간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번역서 판매량은 약 40부 수준이었다. 그러나 수상 발표 후 13시간 동안 1천800부가 판매됐다. 45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는 수상 직후 동일 시간 기준으로 약 1천 부가 판매된 2022년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900부가량 판매된 2014년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초기 판매량을 웃도는 실적이다.
'헤르쉬트 07769' |
◇ 출판사 '대박'…안지미 알마 대표 "한번 읽으면 더 큰 세계 경험"
출판사는 그야말로 '대박'이 난 상황이다. 경쟁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양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주문량이 폭주하는 양상이다.
이처럼 알마의 안지미 대표가 행운을 얻게 된 계기는 책이 아니라 '영화' 덕택이었다.
안 대표는 "20여년 전 전주영화제에서 '사탄탱고'를 봤다. 저한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며 "이후 출판사 대표가 되고서 원작을 출간하게 됐고, 라슬로의 책을 이후에도 꾸준히 내게 됐다"고 했다.
'사탄탱고'는 헝가리 거장 벨라 타르가 연출한 흑백영화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각본도 소설가인 그가 직접 썼다.
안 대표는 "만연체로 글을 써 읽기 어려운 작가이지만 요즘 같은 숏폼 시대에 필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며 "한번 독자들이 경험하면 그 세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크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 계속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출판사 측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일곱번 째 소설 '헤르쉬트 07769'도 내년 중 출간할 예정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 저주받은 걸작 '사탄탱고' 볼 수 있을까
영화계에 따르면 현재 '사탄탱고'와 '토리노의 말' 등 벨라 타르의 주요 판권을 계약한 영화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3년 전 '토리노의 말'을 배급한 찬란의 이지혜 대표는 "예전에 전주영화제 측에서 벨라 타르의 판권을 갖고 있었는데, 계약이 모두 끝나서 현재 판권을 계약한 회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판권을 바로 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만큼 개봉할 가능성도 있지만 긴 상영시간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탄탱고'의 긴 상영시간은 악명이 높다. 무려 7시간 18분에 달한다. 영화제나 특별상영 형식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적은 있지만 정식 개봉까지 간 적이 없는 것도 이런 긴 상영시간 때문이었다. '사탄탱고'는 4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영화인 '칠레전투'와 함께 시네필(영화광) 사이에서 인내심을 시험하는 영화로 '악명'이 높다.
주요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그린나래미디어, 시네큐브 등도 '사탄탱고'를 수입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밝혀 당분간 '사탄탱고'를 정식 개봉작으로 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영화배급사 관계자는 "영화 세일즈 회사로부터 벨라 타르 작품 홍보 메일을 오늘 받긴 했다"며 "특별상영이면 모를까 정식 수입까지 검토는 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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