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시 바슈카우·박상후 지휘자
16일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
日 동요로 카덴차 꾸민 ‘푸른 달’
박상후 KBS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일본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타카시 로렌스 바슈카우/고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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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늘 도화지에 유성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화선지에 먹으로 한국화를 그리는 기분이었어요.”
생애 첫 도전. 불과 넉 달 전 처음으로 국악관현악을 들어봤다고 한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과 같은 한국의 전통 악기와 몇 개의 서양악기가 만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는 음악. 한국인에게도 낯선 이 장르가 일본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의 활 끝에서 음표를 그린다. 타카시 로렌스 바슈카우와 KBS국악관현악단의 만남을 통해서다.
박상후 KBS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는 “국악관현악이 한국 안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섞여 다른 나라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외국인 연주자와 교류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들은 올해로 3회르 맞는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의 둘째날 무대(1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선다.
바슈카우에겐 완전히 낯선 세계였다. 조화롭게 정제된 서양 음악 안에서 성장한 바슈카우는 ‘자연의 소리’를 추구하며 충돌하고, 이질적인 박자를 쓰는 국악관현악을 만난 뒤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감싸는 소리인데, 국악관현악은 더 많은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악기마다 음정, 색깔이 달라 소리가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리듬의 해석 방식도 다르고요.” (바슈카우)
바슈카우의 이야기를 듣던 박상후 지휘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국악관현악 지휘를 공부하고 독일에서 지휘 석사 과정을 밟은 만큼 그는 누구보다 두 음악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높다.
“입시 때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연습하는데 선생님이 왜 이렇게 리듬을 못 하냐고 하더라고요. 드뷔시는 선율이 쭈욱 흘러야 하는데, 전 한국 장단에 맞춰 ‘따다다다’ 하는 식으로 연주하는 거예요. (욱음)”
바슈카우가 연주할 곡은 강상구가 작곡한 ‘푸른 달’. 이 곡은 해금 버전과 바이올린 버전이 존재하는 국악관현악 협주곡이다.
바이올리니스트와 국악관현악의 만남엔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 곡엔 협연자의 카덴차(오케스트라의 연주 없이 독주자 혼자 연주하는 부분)도 있는 만큼 바슈카우 역시 욕심을 냈다.
박상후 KBS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일본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타카시 로렌스 바슈카우/고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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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카우는 “반복되는 구절이 많은데 이때마다 매번 뉘앙스를 다르게 연주해야 하고, 한마디에 한 번씩 박자가 바뀌는 것이 상당히 난관이었다”고 했다.
박상후 지휘자는 바슈카우의 걱정과 달리 “첫날에만 낯설어했을 뿐 적응이 굉장히 빨랐다”고 돌아본다. 그는 “타카시 상은 일본과 독일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성장했고, 한국은 물론 일본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어 굉장히 유연하고 수용력이 엄청나다”고 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바슈카우는 베를린 국립 예술대학 영재원과 학사를 거쳤고,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환학생(2023년)으로 3개월간 머물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가 그의 스승이다. 피아니스트인 엄격한 이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서양 문화에서 성장하면서도 그는 동양적 예의범절과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바슈카우에게 낯선 일은 아니다. 음악가이면서 그는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인 자라 아시아의 모델이기도 하다.
생애 첫 국악관현악과의 만남인 만큼 곡에 대한 연구가 철저했다. 그가 연주할 곡은 강상구가 작곡한 ‘푸른 달’. 바슈카우는 이 곡의 카덴차에 일본 동요 ‘아카톤보’(赤とんぼ, 붉은 잠자리)을 넣었다. 그는 “곡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을 때 푸른 달 아래 떠다니는 고추잠자리의 모습을 보고, 이러한 이미지를 담아낸 음악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곡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잊혀진 변주곡’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전통의 선율로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변주, 그것이 연주하는 아득한 선율을 바슈카우의 시선으로 해석한 표현이다.
바슈카우와 만난 KBS귝악관현악단의 ‘푸른 달’은 국악관현악의 경계 허물기이자 영토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창단 이후 올해로 탄생 60주년을 맞는 국악관현악은 긴 시간 착실히 성장해 왔다. 애초 사랑방에서 연주되는 소규모 형태이거나 궁중음악으로 연주했던 전통의 선율을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대편성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60여명의 연주자가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할 곡조차 없었다. 국악관현악은 수많은 창작곡을 만들어내며 ‘자력갱생’에 돌입했다. ‘푸른 달’은 조금 더 진화한 결과다. 장르의 경계, 전통의 울타리를 넘어 서양의 음악 언어와 악기, 한국인만 연주할 수 있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새로운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박상후 지휘자는 “전통의 악기와 소재, 음색을 담았지만 어법 자체는 서구적인 곡이라 바이올린에 잘 맞는다”며 “난해한 국악관현악이 아니라 대중이 듣기에도 감수성이 탁 와닿는 작품이다. 동양적 정서가 잘 묻어나 국악관현악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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