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날개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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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박인주가 동양적 화풍과 기이한 정서로 직조한 그래픽노블 '날개 연대기'를 선보였다. 날개를 지닌 여성들의 삶과 시대의 기억이 교차하며, 자유의 징표가 억압의 근거로 전도되는 모순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날개가 드러날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은 이 문장의 감각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밀어붙인다.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날개를 지녔지만, 그것이 곧 비상과 해방을 뜻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날개를 자유의 기관인 동시에 반드시 숨겨야 하는 기관으로 제시한다. 자유의 상징이 통제의 근거로 전도되는 자리, 그 불협화의 틈에서 모녀 3대의 기억이 열리고 서사가 전개된다.
엄마 '봉화'는 날개가 있다는 이유로 날개를 숨기며 살아야 했다. 집안과 일터, 사회의 시선은 그의 날개를 축복이 아니라 위험으로 본다.
봉화는 공장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구조적 불평등과 폭력을 겪는다. 날개를 숨긴 채 버티는 동안, 그의 날개에는 암이 자라난다. 병든 날개는 개인의 체력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 탓이라는 사실이 장면마다 새겨진다.
문장 한 줄보다 강한 것은 손을 가르는 칼날의 광택, 어둠 속 붉은 선의 떨림, 무표정한 공간 속 겹겹의 침묵이다. 이 화면구성은 봉화의 일상을 드라마가 아닌 기록으로 정박시킨다.
'아버지'에서는 폭력의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사물의 파손과 구겨진 의복, 눈을 감은 인물의 자세가 그 부재를 말한다. 가장의 권위로 합리화된 소거의 언어 속에서, 날개는 또 한 번 접힌다.
이 책의 또 다른 힘은 형식에 있다. 만화와 회화, 애니메이션적 타이밍이 겹친 페이지 구성은 정지와 운동, 침묵과 소리의 대비를 강렬하게 체험하게 한다. 칸과 칸 사이의 '틈'이 바로 서사의 심장이다.
저자 박인주는 회화·애니메이션·만화를 횡단해 온 작가다.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즐라트코 그리치상, 탈린 영화제 POFF SHORTS 애니메이션 경쟁부문 최우수상의 이력은 그의 시선이 얼마나 면밀하고 독창적인지를 증명한다.
△ 날개 연대기/ 박인주 지음/ 타이피스트/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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