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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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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혁명에도 권력은 필요했다…신간 '궁정인 갈릴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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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스미스소니언디자인 박물관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르네상스 시기 수학자들은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는 '기술자' 취급을 받았다. 대학의 수학 교수조차 철학자 월급의 6분의 1에서 8분의 1을 수령하는 데 그쳤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더 나은 신분과 '돈'을 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머리 좋은 그는 권력의 냄새를 맡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갈릴레이는 직접 개량한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후 이를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메디치 가문에 헌정했다. 곧 목성 주변을 도는 네 개의 위성은 '메디치의 별'로 명명됐고, 그 대가로 갈릴레이는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라는 전례 없는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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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선은하 M101
    [천문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궁정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다. 태양흑점 실험, 망원경 시연회 등 각종 실험과 시연회를 통해 구현된 그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당대 권력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대학→궁정→과학 아카데미'라는 과학자 엘리트 코스를 개척한 인물이기도 했다. 파도바대학에 적을 뒀다가 메디치 궁정에서 일했고, 종국에는 최초의 과학아카데미로 여겨지는 '린체이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1616년 금서로 지정됐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줄곧 지지했던 갈릴레이는 '대공의 철학자'라는 지위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삶의 족적을 관찰한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는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그를 "사심 없는 순수한 과학자가 아니었다"고 묘사했다. 또한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표본인 '궁정인'으로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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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서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최근 출간된 '궁정인 갈릴레오'(소요서가)는 르네상스기 입체적인 인물이자 근대 과학에 토대를 놓은 과학자인 갈릴레이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의 마리오 비아졸리 석좌교수가 주로 궁정 철학자로 활동했던 시기인 1610년부터 1633년까지를 중심으로 갈릴레이의 생을 살폈다.

    저자는 새로운 과학 이론이 기존 체제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논증만으로는 불충분했다고 지적한다. 갈릴레이는 관측과 실험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그 방법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천동설의 일종인 동심천구설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저자는 갈릴레이가 '대공의 철학자'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궁정을 기반으로 상승한 수학자들의 사회적·분과 학문적 지위는 그들이 새로운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갈릴레이라고 주장한다.

    박초월 옮김. 83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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