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주치의다"…의료협동조합 '살림' 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신간] '나이 들고 싶은 동네'

    뉴스1

    [신간] '나이 들고 싶은 동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 '살림'의 13년 여정을 기록한 르포이자 사용설명서 '나이 들고 싶은 동네'가 출간됐다. 책은 주치의 제도와 관계 기반 건강활동, '케어B&B' 같은 중간집 실험을 통해 늙고 혼자여도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을 현실로 그려냈다.

    저자 유여원과 추혜인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결혼이라는 통로를 통과하지 않고도 독립을 택한 세대였다. 그러나 독립의 환호가 가시기도 전에 그들을 맞이한 것은 '텅 빈 돌봄'이었다.

    아플 때 문턱을 넘나들며 기대설 곳이 없고, 혼자 사는 삶이 흔한데도 돌봄의 문법은 여전히 '혈연가족'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했다. 돌봄의 문법을 새로 쓰면 어떻게 될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은 그렇게 태어났다.

    살림은 2012년 창립 이후 서울 은평에서 조합원 5000명 규모의 지역 협동조합으로 자랐다. 핵심은 의료기관을 '기계'가 아닌 '관계'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살림의 진료실에서는 마주 앉은 의사가 '나의 주치의'라고 생각하고 하는 이야기가 오간다.

    책은 의료와 돌봄이 교차하는 현장을 촘촘히 보여준다. 아픈 몸과 마음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할 때, 살림은 '왕진 가방'을 들고 간다. 방문의료의 의미는 한 사람이 처방전을 받아드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글자를 몰라 식단표를 못 읽던 당뇨 환자는 한글 교실에 등록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사귀며 마음까지 돌본다.

    살림의 현장은 '운동·공부·놀이'가 의료와 엮이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주치의가 권유해 나간 운동 모임에서 '주말 대청소'와 '일본어 공부'가 이어지고, 폼롤러와 등산이 쌓여 동네의 관계망은 더 촘촘해진다.

    이 모든 활동의 설계 원리는 단순하다. '건강은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살림은 '건강이웃'을 키우고, 서로의 집 문을 두드려 함께 걷고 스트레칭한다.

    돌봄의 철학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죽음을 둘러싼 문장들이다.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라는 문장이 슬로건이 되었을 때, 살림은 묻기 시작했다. '나다움'은 무엇인가. 나답게 살기 위한 돌봄은 무엇인가. 답은 "자기 결정권"과 "선택지의 다양성"으로 귀결됐다.

    살림의 동력은 결국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주치의다'라는 선언은 의사·간호사·코디네이터뿐 아니라 이웃과 친구, 동네의 상점 주인까지 포섭한다. 누군가 울고 있으면 "꼬치꼬치 질문하는 병원"처럼 사건의 원인을 찾아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마을의 조건을 바꾸려 한다.

    △ 나이 들고 싶은 동네/ 유여원·추혜인 지음/ 반비/ 2만 원

    art@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