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집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한국의 대외 금융자산은 2조7000억 달러(약 3903조)로, 20년 사이 7배 넘게 늘었다. 그 결과 대외 금융자산에서 대외 금융채무를 뺀 순대외자산(NFA)은 지난해 말 처음으로 1조 달러(1445조원)를 돌파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해외투자와 외화보유액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수출이 수입보다 많고, 해외투자에서 들어오는 이자와 배당이 늘어난 덕분이다.
김경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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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대외자산 비중은 55%로, 지난해 말(58.8%) 이후 최대치다. 국가 전체에서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이 넘는 대규모 자금이 해외에 나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 등 해외 증시 강세가 이어지면서 한국인은 국내 대신 해외 주식으로 관심을 돌렸고, 순대외자산 증가로 이어졌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이런 변화가 ‘대외건전성 강화’란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투자 기반 약화와 환율 약세 압력 지속, 글로벌 리스크 노출 확대 등 부정적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겉으로는 돈을 벌고 있지만(경상수지 흑자), 그 돈이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자본수지 적자) 역설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내 투자는 취약해지고 원화의 약세 압력도 커지는 배경이다. 또 고령화로 국내의 성장 잠재력과 투자 수요가 약해지고, 연기금 등 기관이 해외로 투자처를 넓히고 있어 순대외자산은 앞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은은 전망했다.
실제 해외 자산은 과거엔 외환보유액이나 은행의 해외투자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연기금과 개인 투자자와 같은 민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 10월 중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을 68억1000만 달러 순매수했는데, 이는 2011년 통계작성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희은 한은 해외투자분석팀 과장은 “한국의 (GDP 대비) 순대외자산 비율은 일본ㆍ노르웨이 등 전통적 순대외채권국보다 낮지만, 대표적 순대외채무국인 미국 등과 비교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자금 유출은 결국 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내국인의 해외투자소득에서 외국인의 국내투자소득을 뺀 ‘순해외투자소득’ 비중이 2000~2008년 0.7%에서 2015~2024년 4.1%로 6배가량 늘었다. KDI는 “순해외투자가 늘어난 것은 국내 생산성이 하락한 영향”이라며 “국내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해외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국내경제 활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짚었다. KDI에 따르면 생산성이 0.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기업의 국내 자본투입이 0.05%포인트 줄어든다. 생산성 저하는 직접적으로 GDP를 낮추는데, 동시에 국내 자본이 줄어 GDP를 한 번 더 끌어내리는 식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일본의 GDP 대비 순대외자산 비중은 2009년 55%를 넘은 뒤, 2024년 말에는 83%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23년 시작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계기로 변화가 시작됐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의 ‘저평가 기업’에 자본 효율성 개선 계획을 공시하게 했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유도, 지배구조 개선 등을 병행했다. 연기금은 저평가 기업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했다. 이후 일본 증시는 3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순대외자산 증가세도 완만해졌다.
이희은 과장은 “일본의 ‘밸류업’ 사례처럼 주식시장 투자 여건을 개선하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 지수 편입과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 활성화 등을 추진해 국내 시장의 투자 매력을 높여야 한다”고 짚었다. 김준형 KDI 연구위원은 “유망한 혁신기업이 진입하고 한계기업은 퇴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유연한 노동시장을 구축해 생산성 개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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